50분 시정연설 중 장내 야유와 응원 교차
"러일전쟁 전의(戰意) 고양에 사용된 메이지 일왕의 단가도 인용"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김정선 특파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28일 국회(중의원) 시정연설은 응원과 야유가 교차하는 가운데 50분가량 진행됐다.
국내·외 이슈를 아우른 연설 과정에서 2차 집권 6년간의 치적을 중심으로 국내 문제를 언급할 때는 야유가 많이 나왔고, 미래 비전을 얘기할 때는 응원의 박수 소리가 다소 크게 들렸다.
아베 총리는 A4 용지 12장 분량의 연설문을 읽어가면서 야당 의원들의 야유가 나올 때는 목소리를 한 톤 높여 대응했다.
이날 연설을 통해 아베 총리는 그릇된 역사 인식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연설 초반 '야마토(大和, 일본) 정신'을 언급한 부분에서다.
아베 총리는 "일본 민족정신의 웅장함은 어려울 때 나타난다"는 의미를 지닌 메이지 일왕(1852~1912)의 단가(短歌)를 인용했다.
아베 총리의 연설이 끝난 뒤 공산당의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위원장은 기자들에게 "이는 러일전쟁의 전의(戰意) 고양에 사용된 것"이라며 "연설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헌법의 평화주의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인 만큼 강력히 항의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관방 부(副)장관은 "(아베 총리가) 저출산 고령화 등의 국난에 모두 힘을 합쳐 극복하자는 자세를 나타내기 위해 인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니시무라 관방 부장관은 시이 위원장의 비판에 대해 "전혀 그러한 의도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아베 총리는 메이지(明治), 다이쇼(大正), 쇼와(昭和), 헤이세이(平成) 시대를 거치면서 큰 '곤란'(困難)에 수없이 직면했지만, 그때마다 엄청난 저력을 발휘하고 서로 도와가며 입을 합쳐 극복해 왔다고 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주변국보다 먼저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루면서 그 힘을 바탕으로 다이쇼, 쇼와 시대에 국력이 약한 한국, 중국 등 주변국 침략을 본격화한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특히 쇼와 시대(1926~1989)에는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수천만 명을 죽게 했다.
하와이 진주만 침공으로 막이 오른 태평양전쟁으로는 군인을 포함한 자국민도 310만 명 넘게 희생됐다.
이를 아베 총리는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사정이 몹시 딱하고 어렵다'는 '곤란'이란 말로 얼버무린 것이다.
이날 연설로 거듭 확인된 아베 총리의 역사 인식에는 메이지 이후에 자국이 일으킨 전쟁이나 침략은 없었고, 오로지 지진 같은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만 있었던 셈이다.
이 대목에선 박수도 야유도 잘 들리지 않을 만큼 장내는 조용한 편이었다.
아베 총리는 또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한국은 딱 한 차례만 언급했다.
그것도 주변국인 중국과 러시아를 먼저 거론한 뒤 북한 관련 이슈를 말하면서 살짝 걸치는 식이었다.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그 목표 실현을 위해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긴밀해 연대하겠다고 입에 담은 것이 전부였다.
이는 역사 인식을 둘러싼 대립과 최근의 '레이더 갈등' 등 여러 악재가 쌓이면서 수렁에 빠져든 두 나라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고개를 숙인 장면이 한 차례 연출되기도 했다.
그는 최근 일본 국민을 화나게 만든 근로통계 부정 사건의 조속한 수습을 거론하면서 "국민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했다.
연설 시작 40여분 만에 물 한 모금을 마신 뒤 A4 용지 한 장에 담긴 마지막 내용을 소화한 아베 총리는 "약동감이 넘치는 시대를 함께 열어가지 않겠습니까"라는 말로 야유를 덮는 큰 박수를 받았다.
그러고는 다음 세대를 위해 자위대 근거 조항을 담는 방향의 헌법 개정 문제에 대한 논의를 국회가 심화시켜 나가길 기대한다는 말로 연설을 맺었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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