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프 플뤼게 재판관 언론 인터뷰서 "사법독립 침해 사례 많아"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 독일 출신의 국제형사재판소(ICC)의 고위 재판관이 미국과 터키에 의한 국제사법체계 독립성 훼손을 비판하며 전격 사임했다.
2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크리스토프 플뤼게(72) ICC 재판관은 독일 일간지 '디 차이트'와의 인터뷰에서 ICC 재판관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본부를 둔 ICC는 집단학살·전쟁범죄·반인도적 범죄 등을 저지른 개인을 심리·처벌할 목적으로 2002년 설립된 상설 국제법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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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부터 2017년 12월 해산 때까지 구유고슬라비아국제형사재판소(ICTY)종신 재판관을 지낸 독일 출신 플뤼게 재판관은 미국과 터키의 정치적 개입에 대해 "충격적"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강하게 비판했다.
플뤼게 재판관은 ICC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범죄 행위를 조사하려고 하자 미국 정부가 판사들을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ICC가 아프가니스탄 주민을 고문한 혐의를 받던 미군 병사들에 대해 예비 조사를 진행하려 하자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작년 9월 공개 연설에서 ICC를 겨냥해 '폭언'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볼턴 보좌관은 당시 보수단체인 '연방주의자 협의회' 연설에서 ICC의 미군 조사는 '권한도 없을뿐더러 터무니없고 정당성이 결여됐다'고 단언하며 "ICC가 미국의 주권과 국가안보 이익을 위협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우리는 ICC에 협조하지 않고 어떠한 지원도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며 "ICC가 스스로 사라지도록 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플뤼게 재판관은 미국의 이러한 행태에 ICC 재판관들은 그야말로 망연자실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재판관들을 겨냥한 미국 정부의 위협은 새로운 정치 풍토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는 '우리가 세계 일등 국가이며 우리는 법 위에 군림한다'는 새로운 미국의 노선과도 일치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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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뤼게 재판관은 또 터키 정부가 '눈엣가시' 같은 자국 출신 국제재판관에게 범죄 혐의를 덮어씌워 내쫓은 행위도 정치적 개입으로 규정하며 맹비난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터키 정부는 2016년 쿠데타 시도에 연루된 혐의로 이듬해 9월 당시 유엔 전범재판소 잔여업무처리기구(MICT)의 아이딘 세파 아카이 재판관을 체포했다.
유엔 재판관은 외교 면책특권을 갖고 있음에도 터키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아카이 재판관을 체포해 장기간 구금했다. 그는 이후 석방됐으나 결국 MICT 재판관직에서 물러났다.
이와 관련해 플뤼게 재판관은 "터키 정부가 아카이 재판관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며 "나를 비롯한 다른 재판관들이 즉시 항의했으나 유엔 사무총장은 그의 임기를 연장해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유엔이 터키 정부의 개입에 눈을 감으면서 잘못된 선례를 만들었다며 정치적으로 휘둘린 유엔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플뤼게 재판관은 "사법 독립성을 침해하는 일은 도가 지나칠 정도로 많다"며 "나중에 사람들은 이 사건을 언급하며 '터키의 행태는 그냥 두고 보지 않았느냐'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원죄다. 고칠 수가 없다"고 사임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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