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니치, '삐걱대는 한일관계' 기획보도…양국 전문가 제언 소개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지금의 한일관계는 살얼음판 위에 놓인 형국이다. 자칫하면 완전한 파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들린다.
일본 유력지인 마이니치신문이 1일 '삐걱대는 한일관계'란 타이틀로 현 상황을 진단하면서 난국 타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사카다 야스요 간다외국어대 교수, 곤도 세이이치 '한일 문화·인적교류 추진 전문가회의' 일본 측 위원장 등 양국 전문가 3명의 제언을 게재해 눈길을 끌었다.
◇ 양기호 "대북전략 등 인식차가 상호불신 원인"…"징용공 문제, 신(新)기금 설립으로 해결" 제안도
한국 외교부의 정책자문 위원인 양기호 교수는 최근 양국의 불신감이 팽배해진 배경에 동아시아 냉전체제 전환기에 대북 전략과 향후 국제질서를 둘러싼 인식 차가 있다고 진단했다.
북한 비핵화와 관련한 단계적 제재 완화를 이행해 평화체제로 가고자 하는 한국과 철저한 비핵화 검증을 이행하려는 일본의 외교 전략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레이더 논란'도 북한 어선을 한국 해군이 구조하는 과정에서 발생해 상호 불신이 커졌다며 감정적으로 되어 관계가 나빠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양 교수는 일제 징용 피해자에 일본 기업이 배상토록 한 대법원 판결을 놓고 아베 신조 총리가 "국제법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는데, 이는 국제규범에 대한 인식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 사례로 일본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보상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하면서도 1990년대 이후 협정에서 다루지 못한 위안부, 사할린 잔류 한인, 한국인 피폭자 문제에 대한 도의적 지원조치를 강구해 온 점을 들었다.
양 교수는 또 징용공 문제에 대해선 국제노동기구(ILO)가 1999년 강제노동에 관한 조약 위반으로 인정해 한일협정에 근거한 보상으로는 상처를 치유하기에 충분치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며 국제적으로 인권의식이 변화하는 것에 맞춰 일본도 눈을 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2015년 양국 합의로 설립된 위안부 지원을 위한 화해·치유 재단을 한국 정부가 해산하기로 한 것에 대해 아베 정권이 합의 위반이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했다.
일본 측이 낸 자금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70%에게 건네졌고, 더는 신청자가 없는 상황이어서 재단의 역할이 다했다는 것이다.
양 교수는 남은 자금은 전시하에서 성폭력이 재발하지 않도록 국제공헌 목적으로 사용하는 등의 효과적인 활용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징용공 문제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한일협정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ILO가 강제노동으로 규정한 반인도적 행위에 대한 위자료 성격의 새로운 개념이어서 피해자 전체에 판결 효력이 자동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며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배상금을 지불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판결로 확정되지 않은 징용공의 배상 문제 해결 방안으로 새로운 기금 설립을 제안했다.
한일협정 자금을 받은 한국 기업 16개사가 자발적으로 출자하는 기금을 한국 정부가 설립하고, 여기에 소송에 휘말린 일본 기업의 참가를 유도해 한국 정부·기업과 일본 기업으로 구성되는 '2+1' 형태의 기금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는 소송이나 기금으로 구제되지 않는 피해자에는 한국 정부가 대응하면 된다고 했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2008년 이후 한일협정 자금을 활용한 피해자 구제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해 군인, 군무원을 포함한 국외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6천300억원을 지원한 전례가 있다며 한국의 사법 판단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새 기금에는 일본 측이 참가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 곤도 "한일 관계, 부부 사이와 비슷"
곤도 위원장은 한일관계를 부부로 비유했다.
그는 "결혼생활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첫째 인내, 둘째 참기, 셋째와 넷째는 없이 다섯째가 또 참고 인내하는 것"이라며 한일 관계도 인내로 유지되는 부부 사이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두 나라는 이혼해도 서로 얻는 것이 별로 없다"며 "참고, 때로는 체념하는 기분을 갖고 기다리다 보면 냉정함을 되찾아 서로 이익이 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런 성숙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의미에서 체념하고 관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곤도 위원장은 과거의 일을 흘려보내 구애받지 않는 것을 지혜로 여기는 일본 사람과 과거 원한(恨)을 단결 에너지로 삼는 한국인은 국민성이 다르다며 일본이 한반도를 점령(식민지배)한 것에 대해 일본은 쉽게 잊어버리고 한국은 잊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 양국 관계가 악화하길 바라는 '한 줌'의 사람들이 내는 목소리가 부각되는 보도가 이뤄진다며, 대다수 양국 국민은 좋은 관계를 바라고 민간교류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곤도 위원장은 "서로 얼굴을 떠올리는 친구와 지인이 있으면 양국 관계가 악화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상대에 대한 선입관을 갖기 전에 홈스테이, 수학여행, 유학 등을 통한 청소년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일본은 양국 간의 불행한 역사에 관한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사실인 만큼 역사를 배우기 위해서도 교류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곤도 위원장은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언론 매체는 양국 간 충돌이나 사건 등 부정적인 면만 부각하지 말고 균형을 갖춘 보도를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SNS 등의 인터넷 정보는 과격하고 편향돼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끝으로 양국 배우들이 함께 출연하는 영화나 TV 프로그램은 효과가 클 것이라며 연예인 교류를 앞세운 관계 개선 방안을 제안했다.
◇ 사카다 "상대 제압하려 말고 상호 이익 배려하는 대화해야"
국제안전보장학회 이사로 활동하는 사카다 교수는 "한일관계는 1998년의 공동선언 이후 가장 심각한 상황"이라며 경제와 안보 분야에까지 파장이 미쳐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위기라고 진단했다.
1998년의 공동선언 이후 정치, 경제, 사회문화 분야에서 관계를 발전시켜 왔는데, '레이더' 문제로 20년간 쌓아온 방위 당국 간의 기본적 신뢰 관계까지 물거품이 될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한국에 진보 계열 정권이 들어서면 민족에 중요성을 더 두어 한일 간 협력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한국과 미국, 일본은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북한의 위협에 노출된 공동 운명체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카다 교수는 "미국은 압력과 대화를 병행하는 큰 경찰관, 일본은 압력에 무게를 두는 엄한 경찰관, 한국은 대화를 중시하는 착한 경찰관으로서 각자의 역할이 있다"며 일본은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3국 간 협력에 바탕을 둔 억지 방위체제를 견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감정적으로 흐르기 쉬운 것이 한일관계의 어려움이라며 한미일 협력 체제 유지라는 전략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상호 이익을 배려하면서 말하는 전략적 소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사카다 교수는 한일 양국은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려고 하지 않는 어른스러운 협력 관계를 구축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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