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회담 앞서 '공개 발언' 행보 보이며 北에 분명한 메시지…실행조치 견인 포석
상응조치 '선물보따리' 주목…북미 정상 톱다운 협상 특수성 언급도
"할 일 많이 남아있지만, 내 일생 처음으로 DMZ가 실제 비무장화되고 있어"
(팰로앨토=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2월 말 북미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디테일 협상'에 임하면서 북한을 향한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31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 대학 월터 쇼렌스틴 아·태연구소(소장 신기욱)가 주최한 북한 관련 강연 및 일문일답에서다. 지난해 8월 임명된 뒤 '로우키 행보'를 보여온 비건 특별대표가 공개 강연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2차 북미 핵 담판을 조율하기 위한 '스티븐 비건-김혁철 라인'간 북미 실무협상 채널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시점에서다. 국무부는 이날 비건 특별대표의 발언을 생중계했다. 워싱턴 외교가 안팎에서는 "북한의 반응을 주시하며 직접적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날 메시지는 상응 조치에 대한 준비가 돼 있으니 북한도 이를 위한 비핵화 실행조치를 확실히 '선택'하라는 것으로 압축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0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당시 미국의 상응 조치를 조건으로 걸며 영변뿐 아니라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시설 전체의 폐기 및 파기, 그리고 그 이상의 '플러스알파'(+α)에 대한 이행 의사도 밝혔다는 걸 공개적으로 환기하면서다.
그러면서 70년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종전'이 준비돼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거듭 확인하는 한편 체제 전복 의사가 없다며 북한을 안심시켰다. 당장 북한이 원하는 수준의 제재완화에 나서는 데는 선을 긋는 모양새였지만,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이행한다면 그 대가는 어떠한 것도 능가할 것이라며 당근책도 내놨다.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목표를 재확인하며 '최종적 비핵화'를 위해 '포괄적 신고'를 통해 대량파괴무기(WMD)와 미사일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언급한 대목도 이와 맞물려 주목된다. 한동안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 듯했던 핵 신고 문제를 다시 꺼내 들면서도 '일정한 시점에…'라며 초기조치로 요구했던 데서 유연해진 모습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플라토늄 및 우라늄 농축시설 전체의 폐기와 '플러스알파', 그리고 이에 대한 미국의 상응조치를 주고받는 퍼즐 맞추기가 '딜'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내주초 열리게 될 '비건-김혁철 라인' 의 실무협상에서 '디테일'을 둘러싼 치열한 수 싸움이 예고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양측이 가장 큰 간극을 보였던 제재 완화 문제를 놓고 어떤 식으로 접점을 찾을지가 최대 관건으로 꼽힌다.
비건 특별대표의 이날 공개 발언은 내주 초 북미 실무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에 '트럼프 행정부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분명히 전달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 실행조치와 미국의 상응 조치를 둘러싼 협상에서 최대치를 견인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비건 특별대표는 이날 김 위원장이 지난해 10월 폼페이오 장관 방북 때 미국의 상응조치를 걸긴 했지만 북한의 플루토늄 및 우라늄 농축시설들에 대한 폐기 및 파괴를 약속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여기서 말하는 플루토늄 및 우라늄 농축시설은 영변뿐 아니라 그 이외의 시설 단지까지 포함하는 관련 프로그램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부연하면서 북한이 '그리고 더'(and more)라며 '+α'에 대한 뜻도 내비쳤다고도 전했다.
즉 '플루토늄 및 우라늄 농축시설 폐기 및 +α'라는 비핵화 실행조치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α'로는 그동안 미국 본토에 위협이 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 또는 해외 반출, 핵 동결 등이 거론돼 왔다. 김 위원장의 약속을 환기하면서 그 이행에 쐐기를 박기 위한 차원으로 불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와 함께 비건 특별대표는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에 대한 외국 전문가들의 사찰·검증 약속에 대한 세부계획도 이번 실무협상에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가 미국의 변함 없는 목표라는 점을 재확인하면서 비핵화의 정의에 대해 'WMD 프로그램 전체와 그 생산 수단 및 운반 수단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제거'를 수반한다고 규정했고, '외교적 과정'이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 '컨틴전시'(비상계획)도 준비하고 있다며 배수의 진을 쳤다.
그러나 비건 특별대표는 이런 명세서를 들이밀면서 '선물 보따리'도 같이 내보였다. 물론 그 안의 내용물을 풀어 보이진 않았지만, 70년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완전히 새로운 그림을 그려갈 북미 관계의 '밝은 미래'를 강조하며 한껏 유화적 제스쳐를 보낸 것이다.
그는 "우리는 두 나라 간 신뢰구축에 도움이 될, 그리고 (북미) 관계 전환, 영구적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 완전한 비핵화라는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목표와 병행해 추가 진전을 만들어나갈 많은 조치를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며 내주 실무협상에서 북한이 원하는 상응 조치에 대해서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70년간의 전쟁과 적대감을 뛰어넘어야 할 때'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을 끝낼 준비가 돼 있다"고 한국전쟁 종전 이슈를 꺼냈고, 북한을 침공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 정권의 전복을 추구하지 않는다"며 핵무기를 체제보장의 안전판으로 여겨온 북한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지금이 기회이자 중요한 순간"이라며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그린 비전을 현실로 변환시킬 준비가 돼 있다"고 '전략적 변화'를 위한 북한의 선택을 거듭 압박했다.
이와 함께 "북한이 비핵화하기만 한다면 미국은 북한 및 다른 나라들과 함께 대북 투자를 동원하기 위한 최상의 방안을 탐색해 나갈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기존의 '비핵화시 경제발전 지원 입장'을 재확인하는 것이긴 하지만,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에스크로 계좌' 등을 활용한 특별 '경제 패키지'를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 등이 나온 가운데 이뤄진 언급이라 특히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최종적 비핵화'를 위한 WMD와 미사일 전체에 대한 '포괄적 신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어느 시점에는 이를 얻어낼 것'이라고 언급, 신고 카드를 초기로 앞당기지 않고 보다는 후순위로 배치하려는 듯한 언급을 한 점을 두고 핵 신고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인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결국 '단계적 비핵화'에 대한 로드맵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분석인 셈이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도 "미국이 더이상 비핵화 과정의 첫 번째 단계로서 핵 자산에 대한 완전한 목록 제출을 요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걸 시사했다"며 북미협상 과정에서 장애물 하나가 해소될 수 있다고 풀이했다.
핵 신고 문제는 당초 미국이 북한에 강하게 요구해왔던 것이나, 지난해 7월 3차 방북 당시 미국의 '선(先)핵 신고서 제출'과 북한의 '선(先) 종전선언 요구'가 충돌, 북미가 얼굴을 붉힌 뒤 미국 측이 한동안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던 의제이기도 하다.
비건 특별대표는 이날 강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직접 소통'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는 '톱다운식 협상'의 특수성도 강조했다.
그는 지난 25년간 북미협상 실패의 역사를 거론하며 "오늘의 환경도 우리는 성공할 것이라는 걸 반드시 보장하진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처한 상황이나 접근 방식 모두 다르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어떤 미국의 역대 대통령보다 한반도에서의 70년간 전쟁 및 적대를 종식하는데 전념하고 있으며 북한의 '젊은 지도자'인 김 위원장은 비핵화 및 북한 경제발전에 에너지를 쏟아붓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는 것이다.
비건 특별대표는 북미 정상 모두 전통적인 방식에 의해 제약을 받기보다는 '톱다운 방식'을 추구하기로 결정했다며 이 방식이 성공한다면 북미 관계의 근본적 변화 과정에서 더 안정적이고 평화로우며 번영하는 아시아를 만드는데 기여할 '역사적 이벤트'들을 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지난해 말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했던 일을 거론하며 "여전히 할 일들이 많이 남아있지만, 내 일생에 처음으로 DMZ가 처음으로 실제로 비무장화되고 있다"며 지난 1년여 사이 급변한 한반도 정세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결국 내주 초 판문점에서 열릴 것으로 보이는 북미 실무협상에서 어느 정도의 퍼즐 맞추기가 이뤄지느냐에 따라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와 직결될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그만큼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북미 간 신경전도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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