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종량 오수진 기자 = "명절에 엄마(시어머니) 집에 가면 남편이 부엌에 들어온 적이 없어요. 부엌 근처라도 오면 엄마가 혼내거든요. 남편은 거의 침대에 누워있죠"
한국인 남편을 만나 2015년 결혼 생활을 시작한 태국인 A씨에게 결혼 후 치른 첫 설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A씨는 "음식을 만들어놓고 이건 또 바로 먹는 게 아니라 산소에 가져가는 거라고 하더라"며 "또 음식이 너무나 많이 남았는데 치킨과 피자를 시켜 먹는 건 이해가 안 됐다"고 3일 이야기했다.
다문화 가족의 국내 정착 기간이 늘어나면서 부부간 신뢰를 바탕으로 가족 내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지만, 내국인 부부처럼 명절 기간 발생하는 의견 충돌은 이들에게도 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국내 결혼 이민자의 출신국은 베트남, 중국, 태국, 필리핀이 많은 편이며 해당 국가들은 우리나라 비슷하게 설에 가족이 모여 음식을 나눠 먹고 선물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대다수 결혼 이민자는 지나치게 많은 명절 음식, 여성에게 집중된 가사 노동 등 한국 특유의 명절 문화가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몽골인 B씨는 "몽골도 가족 중심적인 문화가 강해 한국처럼 명절 기간 내내 가족과 함께 지낸다"며 "하지만 한국처럼 모든 준비를 여자가 하지는 않는다. 몽골 남성들은 명절 때 만두도 빚고 고기도 삶고 적극적으로 가사에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베트남인 C씨는 "베트남도 설을 성대하게 지내지만 한국처럼 집에서만 있지는 않다"며 "베트남 설에 빠질 수 없는 음식이 떡인데 남자들도 모두 떡 만들기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C씨는 "내가 음식을 만들고 살림을 하는 방식이 한국과 다를 수밖에 없는데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하는 게 아니다'며 '베트남 사람은 다 그렇냐'고 이야기할 때도 속이 너무 상했다"고 덧붙였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날로 커지고 있지만 건강한 가족 관계를 만드는데 필수적인 성 평등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다문화 가족 내 성 불평등 실태와 정책 방향'에 따르면 여성 이민자들은 대부분 가사 노동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으나 가족 내 의사 결정은 제한적으로 행사하는 경향이 강했고 자녀 교육에서도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외국 출신 아내와 한국 출신 남편으로 구성된 다문화 가족에서는 성별 역할 분리 등 보수적인 성별 질서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명절을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가사 부담을 덜어주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대문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강주현 센터장은 "가족들이 모여 결혼이주여성 출신국의 명절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결혼이주여성 입장에서는 자긍심을 높일 수 있고 친척이나 자녀는 새로운 문화를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강 센터장은 "친정 식구와 떨어져 있는 결혼이주여성들을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배려해주는 게 중요하다"며 "명절 기간 친정 식구들과 교류할 기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sujin5@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