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0월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에게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시설의 폐기'를 약속했다고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특별대표가 공개했다. 북한이 내놓은 비핵화 조치로서 가장 진전된 언급이다. 지난해 9월 남북 정상의 평양 공동선언에서 명기된 '북측은 미국이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다"는 약속을 김 위원장의 입으로 폼페이오 장관에게 직접 재확인한 것이다.
비건 대표는 또 미국은 북한 정권의 전복을 추구하지 않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을 끝낼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북미 적대종식과 종전선언을 뜻한다. 북한이 주장하는 핵무기 개발·보유 이유를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하는 언급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공개된 북미 정상의 의지는 비핵화·평화 협상을 긍정적으로 이끌 추동력으로 평가한다.
영변은 북한 핵무력의 상징적 장소이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북미 후속 협상이 교착되던 지난해 가을 김 위원장이 한국과 미국에 차례로 '영변 핵시설 폐기'를 언급한 것은 북미관계 정상화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고 싶다. 플루토늄 시설과 함께 '우라늄 농축시설' 폐기까지 거론한 것은 의미가 있다. 미국이 추구하는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는 플루토늄보다 감시가 어려운 고농축 우라늄 문제 해결은 불가결한 요소이다.
때문에 북한이 미국에 대한 위협만 제거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 수준의 '스몰 딜'이 아니라 보다 과감한 비핵화 조치를 통해 '빅딜'을 하려는 전략적 판단을 내린 게 아니냐는 유추도 가능하다. 김 위원장에게는 북한 경제를 세우는 데 한시가 급하다. 미국과 밀고 당기기 하며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하루빨리 미국으로부터 대북제재 완화와 경제적 보상을 얻어내는 조처를 하는 게 실리적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대가로 수조 원대의 '특별 경제 지원 패키지'를 준비 중이라는 최근 미 언론 보도는 이 점과 맞물려 눈여겨봐야 한다.
협상 성공을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문제는 미국의 상응 조치가 북한 요구를 만족시켜주느냐다. 비건 대표는 선(先) 비핵화라는 경직된 노선에서는 유연해졌지만, "포괄적 신고를 통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의 전체 범위에 대해 완전히 파악해야 한다", "핵심 핵 미사일 시설들에 대한 전문가들의 접근과 모니터링에 합의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핵 분열성 물질과 무기, 미사일, 발사대 및 다른 WMD 재고에 대한 제거 및 파괴를 담보해야 한다" 등 큰 틀의 협상 원칙을 내놓았다. 곧 열릴 북미 실무협상에서 치열한 수 싸움이 예상된다.
다만 비건 대표가 "실무협상에서 북한이 원하는 상응 조치를 논의할 것", "우리 쪽에서는 양측에 신뢰를 가져다줄 많은 행동을 실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것은 희망적 신호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말 북미 정상회담 일정을 미·중 정상회담과 연계할 수 있다고 말한 점도 가볍게 볼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북·중·미' 정상의 연쇄 담판을 통해 비핵화와 한반도 질서의 흐름을 가르는 예상보다 큰 합의가 도출될 수도 있다. 북·미 쌍방의 과감한 결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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