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2년] ④위기의 사법부…사법개혁 어디까지 왔나(끝)

입력 2019-02-06 09:33  

[사법농단 2년] ④위기의 사법부…사법개혁 어디까지 왔나(끝)
핵심은 '제왕적 대법원장' 권한 분산화…자체개혁안 '미흡' 평가
김경수 법정구속 계기로 사법개혁 이슈 여야 대치 쟁점 부상
"수사권 조정안 불만" 검찰 개혁안, 국회 논의 변수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이후 사법부는 국민 신뢰를 되찾아야 하는 엄중한 과제를 안게 됐다.
김명수 사법부도 이런 점을 알고 뼈저린 자기반성과 함께 스스로 환골탈태하기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모색 중이다.
그러나 사법부가 내놓은 자체개혁안을 두고 외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실망 섞인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6월 활동종료 전까지 입법을 통해 사법개혁의 틀을 제도화할 예정인 가운데 여야의 극한 대치가 향후 논의 전망을 점치기 어렵게 만든다.
검찰도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불만을 품고 본격적으로 반발할 조짐을 보여 입법 논의가 또다시 공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 사법부 자체개혁안 내놨지만…"국민 눈높이에 안 맞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불러온 사법 농단 의혹의 배경에는 사법부 내의 권력을 거머쥔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에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전국 법관들의 인사권은 물론 예산집행권까지 사법행정권 전반을 독점하다 보니 수직적이고 보수적인 조직문화가 개선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런 조직문화 속에서는 법관과 재판의 독립은 온전히 지켜지지 않고,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막강한 사법행정권을 악용해 일선 재판에 부당한 간섭을 하는 병폐가 쌓여왔다는 진단이 설득력을 얻었다.
사법 농단 수사로 사법부는 참담한 분위기에 휩싸인 동시에 스스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자정의 목소리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김명수 대법원장도 수사 초기인 지난해 8월 담화문에서 "폐쇄적인 인사 및 행정구조는 사법정책과 재판제도를 설계함에 있어 주권자인 국민의 관점을 소홀히 하고 운용자인 법원의 관점을 우선하는 사고를 갖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사법행정 시스템을 전면 개혁하는 방안은 실천으로 옮겨졌다.
김명수 사법부는 지난해 12월엔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회의와 법원사무처를 신설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혁안의 골자는 법원행정처가 독차지했던 중요 사법행정사무의 의사결정과 행정 기능을 분산화하겠다는 것이다. 심의·의사결정 기구로서 비(非) 법관이 포함된 사법행정회의의 신설, 상근 법관이 없는 법원사무처 설치 등이 방안으로 담겼다.
그러나 여야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가릴 것 없이 "국민 눈높이에 안 맞는다"는 쓴소리가 쏟아졌다.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을 견제하기엔 사법부 안이 너무 미흡하다는 질타였다.



◇ 사법개혁 정국 소용돌이로…검찰개혁도 맞물려 '혼전' 본격화
사법행정 개혁안이 국회에서 차분하고 심도 있는 논의를 거치게 될지도 현재로선 불투명해 보인다. 국회가 순수하게 정책적 논의를 벌이기엔 정국이 혼란스럽다.
특히 드루킹 일당의 댓글 순위 조작에 공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경수 경남지사가 지난달 30일 1심 법원의 판결로 법정 구속되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김 지사의 1심 판결이 사법농단 수사로 타격을 입은 법원의 '보복성 판결'이라고 주장하면서 법원의 손에 맡기지 않는 대대적인 사법개혁을 벼르는 모양새다.
자유한국당은 여당의 이 같은 대응을 두고 "삼권분립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면서 반격하는 모습이다.



법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밀려나 있는 검찰개혁 이슈가 국회 사법개혁 논의의 발목을 잡는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6월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을 확정하고 국회 입법을 추진 중이다. 합의안은 경찰에 1차적 수사종결권을 부여하고 사건을 검사에게 송치하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검찰권을 견제하기 위해 경찰의 재량을 늘리는 방안이다.
검찰은 이렇게 되면 경찰 수사야말로 통제의 사각에 놓일 우려가 크다고 반발한다. 이런 우려를 합의안에 반영하지 못한 검찰로선 입법 단계에서 합의안 통과를 막기 위해 총력을 쏟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이번 사법농단 의혹 수사를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방증하는 대표 사례로 내걸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정치권 눈치 보기와 각종 비위로 개혁 대상 1순위로 몰릴 때마다 대형 수사를 계기로 '위기'에서 벗어난 전례를 연상케 한다.
다른 일각에서는 수사권 조정 논의가 후순위로 밀리도록 검찰이 사법부 수사를 7개월 넘게 끌며 '지연 전략'을 쓴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활동 종료 시점이 6월로 다가온 가운데 검·경의 국회 여론전은 이미 과열 양상을 보인다.
검찰과 경찰은 최근 국회 사개특위 위원들에게 상대방을 각각 독일 나치 정부의 '게슈타포'(비밀국가경찰), 중국 공안에 비유하며 서로를 비방하는 설명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두 기관의 비방 행태가 도를 넘어서자 김부겸 행안부 장관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공동명의로 성명을 내고 "상대 기관을 비난해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자제하라"고 경고를 내놓기까지 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정치권이나 검·경의 행태를 보면 무위로 끝난 과거 개혁 시도처럼 이번 사법개혁도 물 건너가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p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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