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전 세상 떠난 박서영 시인 세번째 시집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당신을 만난 후부터 길은 휘어져 / 오른쪽으로 가도 왼쪽으로 가도 당신을 만나요'('타인의 일기' 부분)
지난해 2월 지병으로 세상을 등진 박서영 시인의 세번째 시집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문학동네)가 시인 1주기에 맞춰 출간됐다.
이번 시집에는 온갖 사랑의 모습과 그로부터 이별하는 과정이 가득하다.
사랑이 남긴 마음의 찬연한 이야기를, 그리고 번진 상처의 무늬를, 시인은 울음을 다 발라내고 처연하지만 의연하게 바라본다.
'슬픔은 성게 같은 것이다 / 성가셔서 쫓아내도 사라지지 않는다 / 무심코 내게 온 것이 아니다. 내가 찾아간 것도 아니다 / 그런데 성게가 헤엄쳐 왔다 / 온몸에 검은 가시를 뾰족뾰족 내밀고. 누굴 찌르려고 왔는지 (…) 실종은 왜 죽음으로 처리되지 않나 / 영원히 기다리게 하나 / 연락두절은 왜 우리를 / 노을이 뜰 때부터 질 때까지 항구에 앉아 있게 하나 (…) 꽃나무 한 그루도 수습되지 않는 / 이런 봄밤에 / 저, 저 떠내려가는 심장과 검은 성게가 / 서로를 껴안고 어쩔 줄 모르는 밤에'('성게' 부분)
이번 책에서 시인은 자기 죽음을 예견한 듯 생의 시작과 끝을 오가며 끊임없이 제 삶을 반추한다.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그의 시는 절망적이지도, 비참하지도 않고 오히려 모든 것을 뜨겁게 받아들인 용기가 가득하다.
그가 써내려간 사랑은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라 세상살이를 겪음에 있어 주체성, 그 능동적이면서 유연한 의연함을 대신한 것이다.
'나는 하늘에 이렇게 적을 거야 / 우울이라는 재미와 불안이라는 재미와 / 슬픔이라는 재미와 고통이라는 재미와 / 기다림이라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고 // 요즘도 잠결에 눈물을 흘리십니까? / 마지막 생존자에게 가닿을 내 그리움은 / 작고 가벼웠으면 좋겠어 / 가볍고 애틋하게 시작한 사랑처럼'('안부' 부분)
장석주 시인은 해설에서 "박서영의 이 아름답고 슬픈 시집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깨진 사랑의 노래이기 때문이 아니라 없는 '당신'을 끌어안은 그 사랑의 끝 간 데 없는 지극함 때문"이라고 적었다.
시인이 2017년 10월 18일 출판사로 원고를 보내오면서 남긴 시인의 말('오늘의 믿음' 부분) 또한 평생 사랑하고, 그 사랑을 노래한 시인에게 죽음조차도 사랑 이야기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준다.
'죽음만이 찬란하다는 말은 수긍하지 않는다. 다만, 타인들에겐 담담한 비극이 무엇보다 비극적으로 내게 헤엄쳐 왔을 때 죽음을 정교하게 들여다보는 장의사의 심정을 이해한 적 있다.
나는 사랑했고 기꺼이 죽음으로 밤 물결들이 써 내려갈 이야기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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