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공연예술계 자치규약 만든 미국 배우
한국형 규약 제작 돕기 위해 방한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남성들을 대화에 참여시켜야 합니다. 더 많은 갈등과 논쟁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들이 있어야 더 좋은 규약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시카고 연극 스탠더드'(CTS) 사례를 공유하는 워크숍에 참석하고자 방한한 미국 배우 로라 피셔는 11일 삼일로 창고극장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CTS는 의사소통, 안전, 존중, 의무를 주요 원칙으로 프리 프로덕션부터 오디션, 연습, 공연 종료 시점까지의 공연 제작 환경에서 일어날 만한 모든 상황에 대한 대처, 예방책을 구체적으로 정리한 예술계 내 자치규약이다.
2015년 피셔의 동료인 로리 마이어스가 성폭력 사건을 겪은 후 '우리 극장에서는 안돼'(NOT IN OUR HOUSE)라는 문구를 소셜미디어에서 올리며 시작됐다.
CTS 창시자이자 코디네이터로 활동 중인 로라 피셔는 8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될 이번 워크숍에서 CTS를 소개하고, '한국 공연예술 자치규약'(KTS)을 제작할 워킹그룹을 위해 다양한 조언을 한다.
피셔는 "CTS를 만드는 데 아티스트들과 전문가 최소 25명이 참여했고, 3년 가까이 걸렸다"며 "관객과 창작자 모두가 공연을 더 즐길 수 있도록 하면서 창작자들에게 더 안전한 상황을 제공하려 했고, 참여자들과 극단, 극장 모두가 CTS가 도움이 된다고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설명했다.
CTS는 현재 시카고에서만 최소 40개 극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보스턴, 텍사스, 오하이오 등 다른 주에서도 사용되니 약 100∼200개 극장에서 이를 활용한다고 피셔는 추정했다.
그는 "아직은 새로운 아이디어이니 CTS가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며 홍보하진 않는다"며 "각 커뮤니티가 자신들에게 더 맞는 방식으로 발전시켜 적용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KTS를 만들기 위해 마련된 8일 집중 워크숍에 여성은 30여명이 참석했으나 남성은 단 한명 뿐이었다.
피셔는 "처음 CTS를 제안한 자리에는 남성과 여성이 비슷한 비율로 있었고, 성폭력 가해자가 아니었던 남성들은 그 사건에 대해 여성들보다 더 화를 냈다"며 "그들은 문제 해결에 참여하고 싶어했고, 실제로 CTS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에 우리는 CTS를 여성들만의 이니셔티브라고 보지 않는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KTS를 만들 때는 영향력 있는 이들을 토론에 포함하고, 문제에 대해 시스템적인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며 "모두가 자신이 KTS에 기여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커뮤니티로부터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세계적인 미투운동을 지켜보며 충격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모두가 함께라는 느낌을 받았다는 그는 "아직 지켜봐야겠지만, 이제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은 가해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피셔는 한국의 남녀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이 안타깝다며 "여성과 남성 커뮤니티 일원들이 대화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남성들도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KTS는 그들의 참여로 더 영향력 있고, 대표성을 띤 좋은 규약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더 많은 논쟁이 일 수도 있겠지만 남성들을 절차 밖에 두면 안 되고, 가해자가 아닌 이들은 함께 분노해 주리라는 것을 믿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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