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 前 교수 책, 등간격 추출 분석·검증 결과
※ 편집자주 = 연합뉴스 탐사보도팀은 2019년 1월 중순에 배철현 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의 표절 의혹을 처음으로 보도한 데 이어, 연합뉴스 디자인팀과 협업해 의혹의 실태를 시각적으로 상세히 보여 주는 영한대역 인터랙티브 그래픽 [탐사 내시경]을 준비했습니다.
[탐사 내시경]은 연합뉴스 사이트에 마련된 특별 페이지(https://www.yna.co.kr/sp/investigative/page-40 [https://www.yna.co.kr/sp/investigative/page-40])에서 페이지를 넘겨 가며 볼 수 있습니다.
배 전 교수의 역주서 『타르굼 옹켈로스 창세기』와 그 원문으로 추정되는 영어책들의 내용을 문장 단위로 상세히 분석하고 비교 결과를 영한대역 방식으로 제시해, 독자들이 표절 의혹의 실태를 직접 상세히 파악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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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 배철현 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의 역주서 『타르굼 옹켈로스 창세기』는 2001년 출간 당시 타르굼(예수 시대에 쓰이던 아람어로 구약성경을 번역한 것)을 최초로 우리말로 옮기고 상세한 역주 해설을 달았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역주서'는 단순 번역서와는 다르다. 역주자의 시각을 바탕으로 책 내용을 해설하고 주석을 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역주서가 단순 번역서보다 훨씬 큰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다.
그러나 연합뉴스가 배 전 교수의 책에서 100의 배수째 줄(행)을 뽑아 이 줄이 포함된 문단들(총 51건)을 분석한 결과, 유명한 영문 학술서의 해당 부분과 아예 같거나 절반 이상 일치하는 경우가 47건(92.2%)에 달했다.
역주자 본인이 스스로의 시각으로 정리했어야 할 내용인데도 거의 모두가 영문 책에서 베낀 것이라는 얘기다.
머리말, 제목, 도표, 아람어-우리말 텍스트 등을 제외하고 배 전 교수가 집필한 부분만 남긴 상태에서 100번째 줄마다 문장을 추출해 하나씩 비교·검증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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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별 해제는 사르나 주석서와 대부분 일치
배 전 교수의 책 중 창세기 각 장에 대한 설명을 다룬 '장별 해제' 부분은 거의 모두 사르나(Nahum M. Sarna)의 창세기 주해서와 내용은 물론이고 문장과 표현 순서까지 일치했다.
예를 들어 배 전 교수 책의 1천500번째 줄에 해당하는 91쪽의 '만일 그들의 관계가 평등하다면 그들은 형제지간이 된다'는 문장은 사르나 주해서 p.68에서 명확히 대응하는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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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이 문장이 속한 문단에는 총 10개 문장이 있는데, 모두 사르나 책과 내용, 표현, 순서가 같았다.
배 전 교수의 책 98쪽에 나오는 '할례' 부분은 사르나 책 p.385에서, 배 전 교수 책 105쪽에 나오는 '수호신' 부분은 사르나 책 p.216에서 각각 확인할 수 있었다. 거의 '1대 1 대응' 수준이었다.
배 전 교수는 책 머리말에서 '장별 해제의 주제들 가운데 몇몇은 사르나의 주석과 부록의 주제를 따랐다'고 밝혔으나, '따랐다'는 포괄적인 표현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몇몇'이 아니라 '거의 전부'가 사르나 책과 일치했다.
배 전 교수는 1월 중순에 서울대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입장문에서 본인 책의 학술적 가치를 강조하면서 280여쪽에 이르는 본문과 각주 부분이 "모두 저의 번역 작업과 설명"이라고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본문 각주 방식의 역주조차 거의 모두 본인의 설명이 아니라 영문 책들을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
100줄 등간격으로 추출된 본문 각주 31건을 확인한 결과, 29건은 사르나의 책과 아버바흐(M. Aberbach) 등의 『타르굼 옹켈로스 창세기』 주해서(이하 TOG)와 일치했다.
2천500번째 줄에 해당하는 138쪽의 '수금은 고대 근동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악기로서 구약에서 언급되는 유일한 현악기이다'는 문장이 속한 부분은 사르나 주석서 p.37의 해당 부분과 동일했다.
아울러 배 전 교수 책 308쪽의 '23, 6 각주 참조'(TOG의 p.203에 나오는 'See supra, chap. 23:6'), 358쪽의 '41, 35 각주 참조'(TOG의 p.251에 나오는 'See supra, chap. 41:35')처럼 그야말로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수준의 각주도 여럿이었다.
◇ 신학계 '일반 상식'도 곳곳에…"필요한 각주, 인용 부호 다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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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탐사보도팀이 명확한 출처를 발견할 수 없었던 문장·문단도 소수이긴 하지만 있었다.
『타르굼 옹켈로스 창세기』 80쪽에서 창세기 1장을 설명하며 '무에서의 창조'(creatio ex nihilo)를 언급한 부분, 154쪽에서 창세기 8장 구절과 길가메시 서사시의 유사점을 지적한 부분이 그 예다.
하지만 이 역시 배 전 교수만의 독창적 견해라기보다 신학계나 고대근동학계에서는 상식으로 통하는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영미권 신학생들에게 매우 널리 알려진 '하퍼콜린스 스터디 바이블'(Harper Collins Study Bible), '신 옥스퍼드 주해 성서'(New Oxford Annotated Bible) 등 해설성경에서도 배 전 교수의 설명과 비슷한 내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배 전 교수는 널리 알려진 내용에 문법적 해설 등을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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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전 교수는 각주 몇 군데서 특정 히브리어 단어가 성서에서 몇 번 나오는지 설명(94쪽, 114쪽 등)을 추가한 경우가 있는데, 이런 정보는 기존의 표준적 참고문헌에 실려 있으며, 요즘은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검색이 가능하다.
25년 넘게 구약학을 전공한 대학교수 A씨는 "표절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다른 자료를 갖다 썼다"면서 "어떤 변명을 해도 명백한 표절"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필요한 각주를 달지 않았고 인용 부호도 빠져 있다. 인용도 문제지만 사르나와 같은 유명 저자의 사상을 그대로 쫓아간 것도 문제"라며 배 전 교수의 책에 대한 검토 의견을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신학과 교수 B씨 역시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명백한 표절"이라며 "해외 대학에서는 실수로 쿼트(인용 부호)만 빼도 거의 범죄 수준으로 본다"고 말했다.
B 교수는 "아람어 전공자에게 번역보다 더 중요한 게 해석과 주석"이라며 "원본에 있는 각주까지 그대로 옮겨 쓴 것은 성의가 없는 것이고 나쁘게 말해 독자를 농락한 것"이라고 배 전 교수의 표절을 비판했다.
(탐사보도팀 임화섭 오예진 김예나 기자)
solatido@yna.co.kr, ohyes@yna.co.kr,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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