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블랙리스트 배상책임 인정…배상액 신중한 판단 필요"
법무부-문체부, 충북 예술인 제기 소송 패소 후 항소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패인 사회적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로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 차원 배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배상액 등은 관련 소송을 통해 결정될 예정이어서 구체화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작성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책임을 통감하면서도, 배상액은 막대한 국고 지출이 예상되는 만큼 신중하고 합리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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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13일 블랙리스트 관련 국가배상 소송에서 항소한 데 대해 "정부는 블랙리스트 작성과 지원 배제 행위의 위법성과 배상책임을 분명히 인정한다"며 "다만 선도판결로서 향후 판결의 준거가 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배상액 산정 기준 등이 모호해 상급심의 심리를 통해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돼 항소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계 부처들의 충분한 협의와 상소심의위원회 심의 등 절차를 거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전날 청주지방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국가배상소송은 법무부 장관이 국가를 대표하지만, 관련 부처가 검찰의 지휘를 받아 소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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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던 충북지역 예술인 25명과 예술단체 2곳은 2017년 초 정부의 블랙리스트 때문에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탄압받고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1인당 2천만원씩 총 5억4천만원을 배상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지난달 24일 예술인 2명과 예술단체 2곳에 2천만원씩, 나머지 23명에게는 각 1천500만원씩 총 4억2천5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는 블랙리스트 예술인들에 대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다.
이 소송만 놓고 보면 소송액이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문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로 인해 피해를 봤다며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이밖에도 8건 더 있다.
여기엔 배우 문성근 씨와 방송인 김미화 씨를 비롯한 문화예술인 34명이 원고로 참여한 소송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주도로 449명이 원고로 참여한 소송 등이 포함돼 있다.
민관합동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는 지난해 6월까지 11개월 동안 진상조사 활동을 통해 8천931명의 문화예술인과 342개 단체의 피해 사실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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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중 대다수 혹은 상당수가 잠재적인 정부의 손해배상 대상이라 할 수 있다.
배상액을 포함한 정부의 배상 방침은 현재 진행 중인 소송 결과를 토대로 정해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들 선도소송에서 1인당 배상액이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따라 정부의 배상액 부담도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 있다.
만약 이번 청주지법의 1심 판결처럼 배상액이 1인당 1천500만~2천만원 선에서 결정된다면, 단순 산술계산으로도 전체 피해자에게 지급해야 할 배상액이 1천억원을 웃돌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반대로 1인당 배상액이 100만원으로 정해진다면 전체 배상액은 100억원 전후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현재 제기된 소송들만 보더라도 원고들의 청구액에 큰 차이가 있다.
민변이 주도하는 소송 원고들은 1인당 100만원을 청구했으나, 문성근·김미화 씨가 참여하는 소송은 원고 청구액이 1인당 500만원이다.
1인당 배상액은 상급심과 다른 소송들의 결과가 나와봐야 알 수 있고, 결과를 예단하기는 이르다.
문성근 씨는 2017년 말 소송에 나서면서 "배상 금액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못을 법적으로 확인해 역사에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가가 배상하는 돈은 국민의 세금이니 정부가 배상한 뒤 이명박과 원세훈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기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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