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장벽 건설이란 사유로 선포하는 건 이례적"
'43년간 58차례' 대통령 예산권한 확대…법적 정당성이 변수
(뉴욕=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멕시코 국경장벽'을 강행하기 위해 꺼내든 '국가비상사태'(National Emergency)는 현직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늘리는 카드다.
연방의회의 행정부 견제 기능을 잠시 보류하고 비상사태에 시급히 대응하자는 취지다.
1976년 제정된 국가비상사태법에 근거한 것으로, 현직 대통령은 의회 승인을 거치지 않고 예산을 재배정할 수 있게 된다.
대통령은 테러 국가에 대한 자산 동결 결정과 주 방위군 동원, 중장급 미만 주요 군지휘관에 대한 임명·해임권을 비롯해 법률이 정한 160개 항목에 대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비상사태 선포는 사안마다 갱신되지 않으면 1년 후 자동으로 폐기된다. 상당수 비상사태는 해마다 갱신됐다.
지난 43년간 무려 58차례 선포됐고 이 가운데 30건가량이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재난에 대응하는 비상사태는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1979년 이란 인질 위기가 시작되자, 당시 지미 카터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이란정부 자산을 동결했고, 이는 아직 유효하다.
"미국은 40년 동안 국가 비상상태"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1년 9·11 테러 직후, 대내외적인 테러 집단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비상사태를 공포했다.
2009년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인플루엔자 A[H1N1](신종플루)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바 있다.
이런 식으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13차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2차례 비상조치를 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국가비상사태 선포로 국방부의 군 건설예산을 '국경장벽 예산'으로 가져다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군 주택건설, 시설보수 등을 위한 미집행 자금이다.
국가비상사태가 40여년 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된 카드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국제 분쟁 등에 대응하는 취지였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국경장벽 건설'은 명분으로는 매우 이례적이다.
USA투데이는 "국가비상사태는 통상적이지만, 국경장벽 사유는 그렇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법적 정당성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연방법원 차원의 법적 논쟁을 예고하면서 자신감을 드러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의회 차원에서도 후폭풍이 예상된다.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하면, 상·하원이 거부할 수 있다. 다만 상원은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방의회 차원에서 제동을 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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