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근로제 합의' 속도 내는 사회적 대화…ILO·국민연금 초점

입력 2019-02-20 11:09   수정 2019-02-20 16:24

'탄력근로제 합의' 속도 내는 사회적 대화…ILO·국민연금 초점
광주형 일자리 이어 사회적 대화 성과…민주노총 불참 등 한계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문제에 관한 노·사·정 합의가 도출됨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대화가 한층 힘을 받게 됐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노동시간 제도 개선위원회는 1박 2일의 최종 담판을 거쳐 지난 19일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문제에 관한 노·사 합의문을 발표했다.
합의문은 경영계 요구에 따라 현행 최장 3개월인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6개월로 늘리고 노동자 건강권 침해와 임금 감소 방지 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경사노위는 곧 본위원회를 열어 노동시간 개선위 합의 내용을 최종 의결하고 이를 국회로 보낼 예정이다. 본위원회는 다음 달 초 개최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국회는 노동시간 개선위 합의 결과를 반영해 관련법 개정을 한다. 정부 여당이 사회적 대화 결과를 존중하기로 한 만큼, 합의 결과는 그대로 법 개정에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문제에 관한 노·사·정 합의는 경사노위가 진행해온 사회적 대화의 첫 결실이다.
지난달 말 광주형 일자리 협약 체결에 이어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합의라는 굵직한 노·사·정 합의가 도출돼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사회적 대화가 탄력을 받는 양상이다.
양극화를 비롯한 한국 사회의 핵심 문제를 사회적 대화로 푼다는 게 문재인 정부의 기조다. 사회적 대화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를 노·사·정 당사자가 참여하는 대화로 풀어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기존 사회적 대화 기구인 노사정위원회를 대체하는 경사노위가 출범한 것도 사회적 대화를 중시하는 정부 기조와 무관하지 않다.
경사노위는 '사회적 대화'라는 이름에 걸맞게 노사정위에 참여했던 주요 노·사단체뿐 아니라 청년, 여성, 비정규직, 중소·중견기업, 소상공인 등으로 참여 폭을 확대했다.



경사노위는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문제 외에도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핵심 의제에 관한 사회적 대화를 진행 중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국내 노동관계법 개정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이 문제는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다.
노사관계 개선위는 작년 11월 ILO 핵심협약 기준에 따른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동조합 가입 허용을 포함한 공익위원 권고안을 발표하고 경영계 요구에 따라 단체교섭과 쟁의행위 등의 의제를 논의 중이다.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는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못지않게 노·사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의제로, 노사관계 개선위 논의도 진통을 겪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노동계를 대표해 경사노위에 참여 중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경영계 요구를 거의 그대로 수용한 사용자 추천 공익위원 권고안 초안에 반발해 사회적 대화 중단 선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사관계 개선위는 논의에 속도를 내 곧 공익위원 권고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과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의 '빅딜' 가능성도 거론된다.
경사노위 산하 국민연금 개혁과 노후소득 보장 특별위원회(연금개혁 특위)가 논의 중인 국민연금 개혁 문제도 국민 노후소득 보장 문제가 걸린 중요한 의제다.
연금개혁 특위도 곧 공익위원 권고안을 발표하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 활동 시한인 오는 4월 중으로 국민연금 개혁 방안에 관한 노·사·정 합의에 도달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경사노위 산하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장시간 노동 근절과 안전 문화 정착 방안을 논의 중이다. 위원회는 과로사 방지법 제정을 위한 큰 틀의 합의에 도달한 상태다.
또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기술 확산에 따른 새로운 위험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 위원회는 노·사·정 공동 입장을 담은 선언문을 곧 발표할 예정이다.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문제에 관한 노·사·정 합의를 계기로 경사노위의 다양한 사회적 대화가 속도를 내는 양상이지만,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한국노총과 함께 노동계의 한 축을 이루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불참은 현재 경사노위의 가장 큰 한계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말 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여 결정을 못 내려 경사노위에 합류할 가능성이 미미한 상황이다.
사회적 대화보다 투쟁을 택한 민주노총은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문제에 관한 합의에 대해서도 '개악'이자 '야합'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이 장외에서 압박 강도를 높임에 따라 한국노총이 경사노위에서 유연한 협상 전술을 펼치기가 더 어려워졌다. 경영계 요구를 수용할 경우 노동계 내부의 비판을 한 몸에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와 고용 사정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가운데 정부가 경영계 쪽으로 기울어질수록 노동계 내부에서는 사회적 대화 무용론이 확산하고 투쟁 노선이 힘을 얻을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대화와 협상보다는 대립과 갈등에 익숙한 노사문화도 사회적 대화의 걸림돌이다. 그러나 경사노위는 사회적 대화의 결실을 하나둘 만들어감으로써 노사문화도 바뀔 것으로 기대한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합의 직후 브리핑에서 "이제 우리나라도 노·사가 대립과 갈등만 하지 않고 첨예한 문제도 합의를 하는구나, 앞으로 다른 문제도 합의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ljglor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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