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1세대 실향민 10만명 "갈수록 나이 들어 마음만 조급" 눈시울
(대구=연합뉴스) 김용민 기자 = "북미회담이 잘 돼 자유롭게 고향을 오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구에 사는 실향민 김모(85)씨는 27일과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큰 진전이 있기를 학수고대했다.
평양이 고향인 김씨는 6·25 당시 열여섯 어린 나이로 남쪽으로 내려온 뒤 지금까지 70년이 다 되도록 고향에 가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나도 90을 바라보지만 지금도 고향에 두고 온 아버지와 어머니, 큰아버지 등 집안 어른들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또 "몸이 아파 지난해 이산가족 상봉 신청도 하지 못했다"며 "아무쪼록 북한과 미국 정상이 이산가족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보여 주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실향민 이모(67)씨는 다른 실향민보다 비교적 젊은 나이여서 이북5도민 연합회 등 각종 모임에서 심부름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다.
6·25 전쟁 중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난 그는 곧바로 남쪽으로 피난 와 고향에 관한 기억은 사실상 없다.
그렇지만 부모님을 비롯해 주위에 있는 실향민들의 삶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대구에는 아직도 10만명 가까운 실향민 1세대가 살고 있다.
그러나 자신처럼 막내에 속하는 실향민도 이제 7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다 보니 갈수록 마음이 조급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해가 바뀔 때마다 점점 소식이 뜸해지는 실향민들을 생각하면 이들이 하루라도 빨리 고향 땅을 밟을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씨는 "북미회담에서 전쟁을 끝낸다는 종전 선언을 하고 실향민들이 죽기 전에 고향 땅을 밟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준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에 사는 2세대 실향민 조모(67)씨도 북미회담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
너른 평야가 있는 곡창지대로 유명한 황해도 연백이 고향인 부모님은 전쟁통에 강화도로 내려와 1952년 조씨를 낳았다.
조씨 위에 아들 둘이 더 있었으나 폭격에 희생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고 한다.
날씨가 좋으면 강화도에서도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황해도 땅이 가까웠지만, 부모님은 끝내 고향에 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인지 조씨는 남북관계가 급진전해 휴전선이 열리면 황해도 연백 땅을 밟아보는 게 소원이다.
조씨는 "싱가포르 북미회담 때도 갑자기 북한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고 잠을 못 이뤘다"며 "이번 하노이 회담이 잘 돼서 실향민, 탈북민 모두 늦지 않게 고향을 다시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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