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3·1운동 주도한 학생들…"독자적이고 전위적으로 시위"

입력 2019-02-24 06:11  

100년전 3·1운동 주도한 학생들…"독자적이고 전위적으로 시위"
학생독립운동 살펴보니…민족운동 침체 때 활기 불어넣어
"독립뿐 아니라 정의·평화 추구…한국사 중요시기마다 학생이 역할"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100년 전 3월 1일 전국 방방곡곡에서 '대한독립 만세'가 울려 퍼졌다. 민족대표들이 발표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운동을 확산하는 데는 학생들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
24일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이 발간한 '서울지역 학생 독립운동 현황과 공유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민족대표들과 함께 당시 국제정세에 민감했던 학생들이 3·1운동의 '주요 추진세력'으로 활동했다.
보고서는 "학생들은 종교계를 중심으로 한 민족대(大)연합전선에 참가하면서 동시에 독자적으로 전위적 시위운동을 전개했다"면서 "특히 독립선언서 배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3·1운동을 처음 계획한 이들은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 간사 박희도와 보성법률상업전문학교 졸업생 주익, 이 학교 학생 강기덕, 연희전문학교 김원벽, 경성의학전문학교 한위건 등이었다. 이들은 1919년 1월 서울 종로구 한 중국음식점에서 만나 각 학교 대표를 선정했다.
전문학교 학생들은 중등학교와 보통학교 학생들을 3·1운동에 참가시키고자 노력했다. 이와 별도로 3·1운동에 참여하고자 일본에서 귀국한 김마리아 등은 여학생들을 조직했다.
1919년 3월 1일 각 학교 대표들은 조례시간에 만세운동 취지를 학생들에게 전했고 학생들은 이날 오후 2시를 기해 탑동공원(현 서울 탑골공원)에 모였다. 이윽고 독립선언서 낭독이 이뤄졌고 학생들은 시민과 함께 행진했다.
학생들의 만세운동은 3월 1일 하루에 끝나지 않았다. 나흘 후인 1919년 3월 5일 학생들은 남대문역 앞에서 2차 시위를 벌였다. 당시 시위 인원은 문헌마다 다르지만, 시민을 포함해 '수만 명'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두 차례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만세운동을 전파하는 역할도 했다. 충남 천안 병천 아우내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한 유관순 열사가 대표적이다.
1919년 3월 1일과 5일 만세운동으로 구속된 학생은 167명에 달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1926년에는 순종의 인산일(因山日·왕가의 장례일)을 맞아 6·10 만세운동이 벌어진다. 당시 만세운동은 학생들이 계획하고 추진한 것으로 평가된다. 일제가 병력 7천명을 요소마다 배치했지만, 만세운동을 막지는 못했다.
6·10 만세운동으로 경찰에 체포된 학생은 서울에서만 200여명, 전국적으로 1천여명에 달했다. 체포된 학생들의 이후 재판에서 진술을 보면 독립을 원하는 열망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중앙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이선호는 "옥에서 나가더라도 기회만 있다면 독립운동을 안 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고 같은 학교 박용규와 김재문은 "지금도 조선독립을 열망한다"고 진술했다.
6·10 만세운동은 침체한 민족운동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3·1운동과 이후 11·3 학생운동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29년에는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시작으로 전국에 학생시위가 번졌다. 이듬해까지 이어진 학생시위는 3·1운동 이후 최대 항일운동으로 꼽히며 현재 11월 3일은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지정돼있다.
당시 시위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1929년 12월 초를 기점으로 불붙은 서울에서의 대규모 학생시위였다. 그해 12월 2일부터 13일까지 시위와 동맹휴학에 참여한 서울 학생은 모두 1만2천여명에 달했다.
학생시위 기세는 이듬해에 더 폭발해 1930년 1월 8일 하루에만 서울 학생의 16%에 달하는 1천700명이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다.
1929년 11~12월 11·3 학생운동에 동조해 가두시위를 벌이거나 동맹휴교를 한 서울지역 학교는 26개교, 1930년 1월 2차 시위에 참여한 학교는 29개교였다.
일제강점기 학생운동은 독립뿐 아니라 민주주의, 정의, 평화 등을 추구했다.
보고서는 학생들은 "일제 지배에서 독립뿐 아니라 정의와 인도가 실현된 사회, 자유·자치·평등이 실현되는 나라, 평화가 실현되는 세계를 갈망했다"면서 "오늘날에도 이런 가치관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20세기 한국사를 돌아보면 중요한 사건마다 학생들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서 "학생들이 역사 속 '능동적, 주도적' 위치에 서 있었다는 사실은 (오늘날) 학생들에게 자부심을 주고 책임감을 갖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jylee2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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