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대북 '톱다운 외교' 중요 시험대…재선가도 동력될 결과물 필요
불리한 국내 정치상황 돌파 필요성도…'동결' 합의에 그칠 우려도 제기
(워싱턴=연합뉴스) 백나리 특파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엄청난 회담을 갖게 될 것이다"
25일(현지시간) 2차 북미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베트남 하노이로 떠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회가 될 때마다 이 말을 반복했다.
이날도 출발에 앞서 마지막 공개행사인 주시자들과의 조찬에서도 "아주 좋은 회담이 될 것"이라며 '엄청난 회담'을 또다시 강조했다.
트럼프 "김정은과 엄청난 회담될 것"…하노이 향해 출발 / 연합뉴스 (Yonhapnews)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로 향하는 에어포스원에서도 트위터에 글을 올려 "매우 생산적인 정상회담을 고대한다!"라고 밝혔다.
미 정치권 안팎은 물론이고 참모진 사이에서도 이번 2차 회담의 성과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계속해서 제기되는 가운데 '2차 핵담판장'으로 출격하며 기대감을 한껏 키우려는 의도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트윗에서는 "완전한 비핵화로 북한은 급속히 경제강국이 될 것"이라며 "김 위원장이 현명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핵담판을 목전에 두고 김 위원장의 과감한 비핵화 조치가 있을 경우 경제적 보상이라는 '당근'이 뒤따를 것을 제시하며 결단을 압박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지사들과의 조찬에서도 "우리는 비핵화를 원하고 그는 경제의 속도에 있어서 많은 기록을 세우는 나라를 갖게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누구보다 이번 2차 회담의 성과가 절실한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1차 회담 이후 구체적 비핵화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이어진 터라 자칫 2차 회담에서 의미 있는 결과물을 거두지 못할 경우 한층 강도 높은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이번 2차 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톱다운' 외교가 사실상 시험대에 오르는 중대 계기라고도 할 수 있다.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로드맵까지는 아니더라도 북한의 영변핵시설 폐기 등 상당한 비핵화 조치를 끌어내야 협상 동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 전망이다.
게다가 2차 회담에서 상당한 결실을 보아야 2020년 대선을 향한 재선 가도에서 대북외교 성과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트럼프 대통령 역시 잘 인지하고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회담을 통해 오바마 행정부를 비롯한 전임 정권에서 한 번도 발을 들이지 못한 북한 비핵화의 영역까지 들어가게 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재선 가도에 외교 치적으로 내세울 호재를 확보하는 셈이다.
국내 정치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2차 회담 성과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 출발 다음 날 미 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을 위해 선포한 국가비상사태의 저지 결의안 표결에 나선다.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한 만큼 통과가 유력한 가운데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에서도 부결을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공언한 상태지만 민주당과의 대치 심화가 불가피하다.
수사 보고서 제출이 임박한 '러시아 스캔들' 특검도 골칫거리다. 수사결과에 따라 심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 있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이를 막아낼 만한 성과 확보가 시급한 처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대로 이번 2차 회담이 "엄청난 회담"이 될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강조하면서 "그저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몇 차례 언급한 데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북한 비핵화 협상이 결국 장기전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현실적 입장에서 단계적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자칫 폐기가 아니라 동결에 그치는 '스몰딜'에서 합의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전날 트럼프 지지층이 주된 시청자인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낙관론을 펴면서도 "실질적인 진전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언급한 데 대해서도 실무협상 진척 상황을 고려해 기대치를 낮추려는 의도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하노이행을 바라보는 미국 언론에서는 북한의 비핵화 진전에 대한 기대감도 엿보이지만 미국에 불리한 회담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적잖게 제기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문제는 비핵화"라면서 영변 핵시설 폐기가 합의될 경우 북한의 핵무기 추가 생산 능력이 둔화된다는 의미가 있지만 북미가 합의에 이를 정도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실무협상을 벌였는지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NBC방송은 "미 고위 당국자들과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얻는 것이 비해 더 많이 내줄 것이라는 우려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를 바라고 있지만 기대는 낮다"고 보도했다.
회담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고 주장할 가능성도 크다.
그는 1차 회담 당시 구체적 비핵화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김 위원장이 국제무대에 데뷔할 기회만 줬다는 비판에 대해 핵·미사일 실험 중단으로 미국인을 안전하게 했다는 주장으로 응수해왔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 성향이 불리한 합의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이고 승부사절 기질이 뜻밖의 '빅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어서 그가 얼마나 두둑한 보따리를 들고 귀국길에 오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nari@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