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계급과 과시적 소비로 자본주의 분석·비판

입력 2019-02-26 09:49  

유한계급과 과시적 소비로 자본주의 분석·비판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새 번역본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원시시대에 인간은 모성적이고 평화로우며 근면하고 평등했다. 하지만 원시시대가 끝나고 야만 시대에 들어서면서 삶은 각박하고 잔혹해졌다. 약탈적이고 불평등한 삶으로 그 양태가 바뀐 것이다.
이어 열린 수공업 시대와 기계생산시대. 인간의 일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생산이 증가하고 속도가 빨라지는 등 이른바 '발전'을 했지만, 약탈적이고 불평등한 시대라는 점에서는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19세기 미국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1857~1929)은 저서 '유한계급론'을 통해 그 시대의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원시시대, 야만시대, 수공업시대, 기계생산시대는 그가 구분한 네 가지 시대 현상이었다.
그의 시각과 분석은 지금으로부터 1세기 전의 상황에 국한된 것인가? 이 시대에는 적용될 수 없는 낙후된 시각과 분석에 불과하냐는 것이다. 이 책은 오늘날의 자본주의 경제와 사회 체제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유효하다.
베블런이 대학을 졸업하던 1880년대는 미국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발전 가도를 달리던 시기였다. 대륙횡단철도가 건설됐고, 이민 노동자의 대량 유입, 보호 관세의 폭등, 외국 자본의 도입 등으로 19세기 마지막 25년 동안 공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 같은 경제 발전에 힘입어 거대 독점자본이 등장한다. 하지만 농민과 노동자는 빈곤에 내몰렸고, 미국 각지에서 대규모 파업이 일어난다. 약탈과 불평등 경제 현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난 것이다. 엄청난 변화 속도에 기존의 고전파 경제학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이 무렵에 베블런은 진화론의 다윈과 토지개혁가 헨리 조지, 사회주의 창시자 마르크스 등 많은 학자의 성과를 연구해 '유한계급론' 등 자신만의 독특한 학문적 업적을 이뤄내며 시대상을 꿰뚫어 본다.
물건의 값이 비싼 이유는 뭘까? 물론 품질이 좋아서일 것 같다. 그렇다면 꼭 그럴까? 비싼 제품일수록 물건의 질이 더 좋기 때문에 잘 팔리느냐는 얘기다. 베블런은 기존 경제학자들의 이 같은 시각을 비판적으로 극복해 부유한 유한계급은 자신의 명성을 과시하기 위해 비싼 제품을 산다는 데 방점을 두고 분석한다.



베블런에 따르면 유한계급은 사유재산제와 같은 시기에 출현했다. 직업의 차별이 생겨나면서 어떤 직업은 가치 있고 어떤 직업은 무가치하다는 분별심이 커졌다. 부는 소유자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증거였는데, 심지어 강인한 육체를 가진 남성은 여성을 소유하는 지배자가 됐다. 남녀 불평등의 기원이다.
타인에게 지지 않고 타인의 소유를 빼앗아온다는 약탈적 관습은 경쟁과 차별 등을 심화시켰다. 재산은 전승의 대가로 가져온 전리품의 성격을 지녔다. 사람들의 욕망은 재산 축적에서 타인을 능가하는 것이 됐고, 부의 소유는 명성과 존경, 명예를 확보하는 첩경이었다.
특히 사유재산제가 인간의 소유, 주로 여성에 대한 소유에서 시작됐다는 지적은 씁쓸함을 자아낸다. 재산으로서의 인간을 확보토록 조장한 요인이 △ 지배하고 강제하는 성향, △ 소유자가 가진 용맹의 증거로서의 예속된 인간의 효용, △ 재산이 제공하는 노역의 효용에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다소 거친 듯하나 면면을 들여다보면 속성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재력을 과시해 평판을 얻고, 필요 이상 소비를 통해 우월성을 확인코자 한다는 점에서 현대에도 그 같은 현상은 상당 부분 여전하다. 저자는 "과시적 소비 법칙의 작용이 특히 명백하게 인정되는 것이 의복"이라며 "의복 비용이 그 사람의 재정 상황을 누구에게나 한눈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대부분에 비교해 뛰어난 예시"라고 말한다.
유타대학교의 E.K 헌트 명예교수는 원시 사회의 건강성을 현대 사회도 지향하자는 베블런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기득권 집단에 맞서서 보통 사람을, 약탈적인 위업에 맞서서 이성적이고 평화적인 인간관계를, 부당이득을 취하는 비즈니스의 사보타주에 맞서서 건설적인 일을 즐겨 떠맡는 일꾼 근성을 근본적으로 옹호했던 정열적인 학자였다."
타계 5년 전인 1924년, 젊은 학자들이 자신을 미국경제학회 회장을 추대하려 했으나 베블런은 이를 기꺼이 사양한다. 그리고 오두막에서 만년을 보내다가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표표히 떠난다.
번역은 영남대 교양학부 교수를 지냈던 박홍규 씨가 맡았다. 문예출판사. 392쪽. 1만5천원.
id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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