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내 오빠는 연쇄살인범입니다."
1983년 네덜란드 전역을 발칵 뒤집었던 맥주회사 하이네켄 회장 납치사건.
사건 주범인 빌럼 홀레이더르는 이외에도 수많은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여러 번 수감됐지만, 수려한 외모와 뛰어난 언변으로 '셀러브리티 범죄자'가 됐다.
감옥에 있음에도 여전히 범죄의 세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를 상대로 죽음을 무릅쓰고 법정에 증언을 나선 아스트리드와 소냐.
그들은 다름 아닌 빌럼의 친여동생들이다.
아스트리드 홀레이더르가 오빠 빌럼과의 기억을 담은 회고록 '나의 살인자에게'(다산책방)가 국내 출간됐다.
알코올 중독자에 가정폭력을 일삼는 가부장적 아버지를 빼닮은 빌럼.
빌럼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적 면모를 드러내며, 돈을 위해서라면 동료들을 협박하고 '제거'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가족도 예외는 아니어서 어머니에게 폭언을 일삼고, 절친한 친구이자 동생 소냐의 남편인 코르 역시 살해한다.
급기야 자신의 조카, 즉 여동생의 어린 자식의 머리에까지 총구를 겨누게 된 그를 보며 아스트리드는 한때 목숨도 바칠 수 있는 존재였던 빌럼을 '배신'하기로 마음먹는다.
가정폭력으로 얼룩진 유년 시절, 다정한 오빠이자 아버지와도 같았던 존재가 범죄자이자 나와 가족을 불행하게 하는 괴물이 되어버린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살인자에게'는 잔인한 범죄자를 고발하기 위한 치밀한 과정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소중한 가족을 교도소에 보내기까지 자신 안의 갈등, 죄책감, 연민과 싸워야 했던 절절한 아픔의 기록이기도 하다
'집에 들어오자 엄청난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나는 내 친오빠를 배반하고 있었다. 나에게 비밀을 털어놓고 나와 함께 자신의 몰락을 향해 걷고 있는 줄 전혀 모르는 오빠를. 거울 속으로 뺨을 따라 눈물이 흐르는 게 보였다.'(222쪽)
빌럼은 교도소 안에서 아스트리드의 살해를 지시했고, 설령 빌럼이 죽는다 해도 이 '명령'은 아스트리드가 죽을 때까지 유효할 것이다.
아스트리드는 살해 위협을 피해 직장도 그만두고 숨어 살며 원고를 완성했고 여전히 숨어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말한다.
"나는 모든 것을 다 잃었다. 그래도 아직 살아있다."(520쪽)
마지막에 아스트리드는 빌럼에게 여전히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절절한 편지를 띄운다.
'빔 오빠, 내가 왜 오빠에게 이런 일을 했는지 궁금하다면, 이게 내 답이야. 오빠 때문에 아빠를 잃은 모든 아이를 위해서. 그리고 그 고통에서 구해주고 싶은 모든 아이를 위해서. 이제 살인을 멈출 때야. 소냐 언니와 산드라, 나는 오빠를 상대로 증언을 했고 우리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하겠지. 하지만 그런 확실한 사실에도 난 여전히 오빠를 사랑해.'(527∼528쪽)
김지원 옮김. 다산책방. 536쪽. 1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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