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달인' 이란 외무장관 돌연 사의 배경은

입력 2019-02-26 19:23  

'외교 달인' 이란 외무장관 돌연 사의 배경은
핵합의 위태, 경제난 가중…이란 내 보수세력 압박
이란 대통령, 외무장관 사의에 "대미 저항의 선봉" 옹호
보수 진영 압박에 '강수' 시각도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이 사임하기로 한 것은 그가 총괄한 이란 핵합의와, 서방과 대화해 경제난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현 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한 압박이 커진 탓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란이 핵합의를 준수했으나 미국 정부가 지난해 5월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하면서 군부를 중심으로 한 이란 내 강경 보수세력은 미국에 속았다면서 하산 로하니 대통령 정부를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이 지난해 8, 11월 대이란 제재를 복원하면서 이란의 경제난과 민생고가 심각해져 현 정부와 핵합의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 하락했다.
자리프 장관도 이런 압박이 사임의 원인임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26일 이란 국영 IRNA통신에 "나의 사임이 외무부가 대외 관계에서 제자리를 찾는 촉진제가 되길 바란다"고 말해 자신을 반대하는 외압 탓에 외무부의 위상까지 위태로워졌다는 점을 시사했다.
또 이날 발간된 이란 보수 일간지 줌후리에 에슬라미와 인터뷰에서 "외교 정책에서 최우선으로 배제해야 하는 것은 정파 간 싸움이다"라며 "외교 정책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는 외교 정책에 독약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에서 외국과 협상을 낱낱이 국민에 공개하지 않으면 국민을 적으로 여기는 것이라고 하는 데 그렇게 하면 진짜 적들이 우리의 전략을 모두 눈치챈다"며 "외교 정책은 내부의 신뢰가 절대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정 세력이나 정파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현 정부의 유연한 외교 정책을 반대하는 강경 보수파를 염두에 둔 셈이다.
2013년 8월 취임 때부터 그를 외무장관으로 기용했던 로하니 대통령은 26일 "미국의 제재에 맞서 최전선에서 앞장선 외무장관, 중앙은행 총재, 석유장관에게 감사를 전한다"며 "이들은 최전선의 군대다"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면서 "미국의 제재에도 우리는 엄청난 성취를 이뤘다"며 "제재를 받을 때 보통은 무역 적자가 나지만 올해 비(非)석유 부문의 흑자가 15억 달러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중도·실용파인 로하니 대통령은 2013년 대선에서 승리, 강경 보수 성향의 전 정부를 대체했다. 그러면서 국방·안보 분야는 보수적인 색채를 유지하는 대신 경제, 외교 분야의 핵심 요직을 대거 교체했다.
미국 유학파로, 미국에서 외교관 생활을 오래 한 자리프를 외무장관으로 발탁하면서 전 정권에서 경색된 서방과 관계를 개선하고 핵협상을 시작하겠다는 정책 전환을 대외에 알렸다.
자리프 장관은 유엔 주재 이란 대사(2002∼2007년)를 지내면서 노련한 화술과 능수능란한 협상 실력으로 '외교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로하니 대통령의 기대대로 자리프 장관은 2년간 협상 끝에 2015년 7월 핵협상을 타결하는 데 크게 역할 했다.
따라서 현 정부의 상징과 같은 그의 사임은 로하니 대통령에게도 큰 타격이 된다.
일각에서는 최근 보수 진영의 반대로 정부가 추진하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가입에 제동이 걸리면서 자리프 장관이 강수를 던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FATF에 가입하지 않으면 핵합의를 유지하기 위해 유럽연합(EU)이 설립한 이란과 교역을 전담하는 금융회사 '인스텍스'가 가동되지 않을 수 있는 구실이 될 수 있다.
EU는 이를 인스텍스 가동의 전제 조건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이 회사를 설립한 뒤 돈세탁 문제를 슬슬 문제 삼는 분위기다.
자리프 장관은 25일 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외무장관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로하니 대통령은 이를 수락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란 의회(마즐리스) 의원 과반은 26일 자리프 장관의 사의를 거부하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긴급히 작성해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hsk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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