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日암장지보존회장 "민족이 있는 한 그분도 영원히 산다"

입력 2019-02-27 12:00  

윤봉길 日암장지보존회장 "민족이 있는 한 그분도 영원히 산다"

(가나자와=연합뉴스) 김정선 특파원 =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윤봉길 의사에 대해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이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지난 26일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가나자와(金澤)에서 만난 '윤봉길 의사 암장지 보존회'의 박현택(75) 회장은 보존회를 꾸려나가는 이유에 대해 이같이 답했다.


윤봉길(尹奉吉·1908∼1932)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일본군이 중국 상하이(上海) 홍커우(虹口)공원에서 상하이 점령 기념식을 열자 일본군 수뇌부에게 폭탄을 던졌다.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같은 해 5월 일본 군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12월 19일 가나자와 일본 육군 공병작업장에서 총살당해 순국했다. 윤 의사의 유해는 1946년에야 발굴작업을 거쳐 고국에 봉환됐다.
윤 의사가 순국한 뒤 암매장됐던 장소에는 1992년 암장지적(暗葬之跡)비가 건립됐다.
보존회 초대회장은 박 회장의 숙부인 박인조 씨였다. 박 회장은 숙부가 작고한 2009년 이후 올해로 10년째 보존회장을 맡고 있다.
보존회는 재일동포 30여명으로 구성됐다. 회원들은 암장지적비를 보살피는 일을 함께하고 있다.
박 회장은 자신에게 "더욱 책임감이 크다"며 "나라를 위해 싸운 분을 선양하는 사업이 잘되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초대회장인 숙부에 대해 "민족성이 강했고 윤 의사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둔 것 같다"며 "윤 의사에게 자신의 청춘과 정열을 바친 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보존회 일에 대해선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백부(박동조 씨)와 부친(박성조 씨)은 1946년 윤 의사 유해 발굴 활동에 함께 참여했다며, 윤 의사와 이어지고 있는 가족과의 인연을 설명했다.
가나자와에서 태어나 성장한 그는 "윤 의사에 대해 공부하면서 한국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윤 의사를 통해 민족의식도 갖게 됐다고 생각한다"고 돌아봤다.
박 회장은 윤 의사가 순국했지만 "진짜로 (현재도) 장수하고 있다"며 "민족이 있는 한 영원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윤 의사의 기상이 한민족의 마음속에 계속 살아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그는 "버스로 이곳 암장지까지 찾아오기가 쉽지 않다"며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고맙다"고 말했다.
한국인들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일본 기업인 후지코시(不二越)에 강제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본의 시민단체 '호쿠리쿠(北陸) 연락회' 관계자도 이곳을 찾는다고 박 회장은 전했다.
그는 앞으로 바라는 점으로 "나라를 위해 일하는 정부 요인이 일본을 방문할 때 이곳에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근에 기념관이나 사무소를 만들고 싶다. 어떤 형태로든 거점이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덧붙였다.
js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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