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엘 하르트만, 저서 '엘리트 제국의 몰락'에서 논파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격차사회다. 사회·경제적 양극화 현상이 심해졌다. 그 현상의 완화 또는 해체가 쉽지 않을 만큼 고착화했다. 지배 계층인 엘리트와 일반 대중 사이의 거리는 지난 수십 년간 무척 멀어졌다. 단절됐다 싶을 정도다. 봉건시대를 뛰어넘는 부익부 현상이 날로 심화하는 가운데 중산층은 붕괴하고 빈곤율은 급증한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민낯이다.
상류층을 위한 정치가 본격화한 때는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시절이었다. 세금 감면과 시장규제 완화, 국영기업 민영화 등의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소득과 자산은 상류층에 집중됐고, 중하류층은 빈곤과 소외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신자유주의 정책 시행은 내각 구성에서부터 이뤄졌다. 대처 총리는 첫 내각의 각료 22명 중 절반이 넘는 13명을 상류층으로 임명했다. 노동자 계층은 한 명도 없었다. 이전의 제임스 캘러헌 총리는 내각의 70%가량을 노동자 계층과 중하류 계층 출신으로 임명했다. 정치 엘리트의 지배는 사회적 채용 방식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고, 이 같은 편중 현상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1980년대를 주름잡은 신자유주의 현상은 미국에서도 광풍처럼 확산됐다. 이전의 지미 카터 대통령 때는 22명의 각료 중 4분의 3가량이 노동계급과 중산층 출신이었으나, 레이건 정부가 들어서자 반대로 상류층과 중상류층이 내각의 4분의 3가량을 차지하며 국정 운영을 좌지우지했다. 철저히 상류층을 위한 정치였던 것이다. 상위 1%가 차지하는 자산은 급격히 늘어 총자산의 절반에 가까운 42%에 이른다.
독일의 사회학자 미하엘 하르트만(67)은 엘리트 계급이 어떻게 형성됐고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탐색하는 엘리트 연구의 권위자다. 그는 '글로벌 경제 엘리트', '엘리트와 그들의 유럽 지배력' 등 관련서와 더불어 이번에 우리말로 번역·출간된 '엘리트 제국의 몰락'을 펴내어 정치·경제·사회·사법·언론 등 각 분야에서 개인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엘리트의 실체를 파헤쳤다.
일반적으로 '엘리트'는 우수한 능력이 있거나 높은 지위에 올라 지도적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긍정적 의미로 이해된다. 하지만 저자는 "엘리트라는 용어가 나치 정권의 범죄에서 기원한다"면서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자신들만의 규칙에 따라 살아가는 배타적 계급이라고 비판한다.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며 불평등을 확산시키는 꺼림칙함을 본래 이 용어가 담고 있었다는 것이다.
대중과 괴리된 삶을 사는 정치 엘리트 집단은 점점 대중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서 자신이 내리는 결정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 또한 인식하지 못한다. 그 결과로 엘리트주의는 대중의 정치 혐오와 우익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의 부상을 낳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기반은 흔들리게 된다. 저자의 나라인 독일의 경우 1990년대 후반에 신자유주의가 빠르게 확산돼 당시 14배 수준이었던 일반 직원과 CEO(최고경영자)의 임금 격차가 지금은 80배로 급증했다. 이를테면 영국과 미국의 데자뷔다.
지난 30여년간 전 세계의 엘리트주의를 연구한 저자는 사회 각 분야 엘리트들이 어떻게 사회 불평등을 조장하면서 사적 이익을 챙기는지, 그리고 이런 행태가 어떻게 사회 갈등을 유발하는지 이 책에서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를 위해 영국, 미국은 물론 독일, 프랑스 등의 사례를 비교함으로써 가진 자들의 권력과 경제 유산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알고리즘을 세밀히 분석했다.
이와 함께 엘리트에 대한 개념과 정의를 새롭게 바꾸면서 소수의 세력이 폐쇄적으로 지배하는 괴리의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 포괄적이고 건강하게 열린 엘리트 사회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엘리트는 '보통 사람'과의 사회적 차이를 내보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책의 개요를 차례로 살펴보면 '제1장 그들만이 사는 세상, 엘리트 제국'은 엘리트 제국이 무엇인지 그 속성을 다뤘고, '제2장 엘리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엘리트를 규정하는 중요한 특징과 함께 교육과 선별절차로 그 계급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폈다.
'제3장 엘리트는 어떻게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하는가'에서는 신자유주의가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여 지면서 심화한 소득과 빈부 양극화와 더불어 그를 뒷받침하는 정치·경제적 결정 과정을 분석했고, '제4장 공익보다는 사익, 엘리트 제국의 규칙'에서는 세금을 회피하려는 전 세계 엘리트들의 행태를 비롯해 사회적 격차에 대한 엘리트들의 시각을 다뤘다. 이와 함께 '제5장 신자유주의를 넘어선 정치는 가능한가'는 사회적 불평등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과 미래의 정책적 변화 가능성을 탐구했다.
저자는 부와 권력을 소수 상류층에 집중시키고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며 불평등과 양극화를 확산시키는 엘리트주의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신자유주의 정책과의 결별 그리고 엘리트 계급의 개방성이 요구된다고 역설한다. 이 같은 저자의 관점과 주장은 신자유주의를 무비판적으로 도입함으로써 개인의 성공이 철저히 인맥이나 출신 배경에 따라 결정되고 계층간 이동 가능성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요긴한 반면교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라이프 펴냄. 이덕임 옮김. 376쪽. 1만6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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