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박이 형에 속아 동생 주민증 발급…법원 "국가책임 없어"

입력 2019-03-04 07:03  

판박이 형에 속아 동생 주민증 발급…법원 "국가책임 없어"
형, 명의도용해 카드 발급·전화 개통…"공무원 직무상 의무 위반 없어"



(서울=연합뉴스) 이보배 기자 = 주민센터에서 얼굴이 빼닮은 형에게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발급해주는 바람에 명의도용 피해를 봤다며 40대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86단독 김상근 판사는 이모(44) 씨가 대한민국과 성남시, 성남시 소속 공무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중국 국적을 갖고 있던 이씨는 1996년 한국으로 들어와 결혼한 다음 귀화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역시 중국 국적을 갖고 1999년부터 국내 입출국을 반복했던 그의 형 A씨는 외모가 비슷한 동생 명의의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하려 했다.
여러모로 한국인 신분증이 필요했던 A씨는 2017년 9월 성남시의 한 주민센터를 찾아 이씨 행세를 하며 주민등록증 재발급을 신청했다.
당시 공무원은 전자지문인식 시스템에 등록된 지문과 A씨의 지문이 일치하지 않자, A씨 용모와 제출한 사진을 전산시스템에 등록된 사진과 대조했다. 또 A씨에게 가족 사항 등을 물어 주민등록표상 정보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
결국 A씨가 이씨 본인이라고 판단하고, 주민등록증 발급확인서 및 주민등록증을 발급했다.
A씨는 이를 이용해 그해 9∼10월 이씨 명의 휴대전화를 개통했고,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물건을 사고,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기도 했다.
이씨가 뒤늦게 명의를 도용당한 사실을 깨닫고 통장 거래정지조치를 취할 때까지 통신사와 카드사 등에서 발생한 명의도용 피해액은 4천300여만원에 달했다.
이에 이씨는 주민등록 재발급 업무 처리에서 국가의 과실이 있다며 2017년 11월 총 1천242만원의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명의도용 피해자인 점이 인정돼 직접적인 금전 손해까지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형의 범행과 관련해 경찰서 등에 출석해 수차례 참고인 조사를 받은 데 따른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다. 최소한 일용직으로서 10일간 242만원의 일실수입 손해를 보고,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는 것이 이씨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공무원이 이씨 명의의 주민등록증 재발급 업무를 처리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한 직무상 의무위반행위가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씨와 A씨는 친형제 간으로 외형이 매우 흡사하여 맨눈으로 봐서는 전산시스템에 등록된 이씨의 사진을 비교하는 방법으로는 A씨가 이씨 명의를 사칭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는 어려웠고, 가족 사항 등을 문의한 결과도 전산시스템에 등록된 이씨의 정보와 일치했다"고 밝혔다.
이어 "주민등록증 재발급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전자지문인식 시스템으로 본인확인을 하는 경우 후천적인 지문 닳음 또는 피부질환 등으로 인한 지문의 변화, 전산에 최초 입력된 지문의 상태 등으로 인해 본인이 맞음에도 지문확인이 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주민등록증 재발급으로 인해 이씨의 어떠한 권리·이익이 침해되어 구체적 손해가 발생했다고 인정되지도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bob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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