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일본군을 용서할 수 없다던 할머니의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4일 전남 담양군 담양읍 평화의 소녀상 앞 광장에 검은색 옷차림을 한 100여명의 주민들이 모였다.
지난 2일 별세한 고(故) 곽예남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하기 위한 추모객들이었다.
이들은 곽 할머니의 영정 사진과 유해가 담긴 유골함을 소녀상 옆에 모셔두고 추도사 등을 통해 고인의 한 많은 생애를 기렸다.
추도사를 낭독하는 동안 추모객들은 연신 눈물을 훔치며 곽 할머니를 그리워했다.
곽 할머니를 도와온 일본군 성노예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광주나비 백희정 대표는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를 바르고 손을 내밀며 자랑하던 모습을 더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며 "지난 3년 동안의 추억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그는 "할머니가 지난 60여년 간 아프고 외롭고 무서웠을 그 세월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며 "생전의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은 훌훌 털어버리고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말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추도사를 읽던 백 대표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삼키기 위해 몇 번이나 숨을 고르기도 했다.
전남도교육청 장석웅 교육감은 조사를 통해 친일 잔재 청산을 강조했다.
장 교육감은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반성, 정당한 보상 없이는 눈을 감을 수 없다는 절통한 심정이 삶을 지탱하는 힘이었을 것"이라며 "이제 할머니의 한을 푸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친일 잔재를 씻어내는 것만이 할머니의 못다 한 염원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곽 할머니는 1944년 만 열아홉의 나이로 일본군 순사에게 폭력적으로 연행돼 중국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해방 이후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던 곽 할머니는 2004년 고국으로 돌아왔다.
2015년 12월 폐암 4기로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뒤에도 3년이 넘는 선물 같은 시간을 보내다 지난 2일 향년 94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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