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이 사라졌다"…제주마저 삼킨 미세먼지

입력 2019-03-05 09:30   수정 2019-03-05 18:31

"한라산이 사라졌다"…제주마저 삼킨 미세먼지
출근길·등굣길 고통 호소…"숨을 못 쉬겠다. 빨리 물러갔으면"
제주, 사상 첫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청정 제주마저…마지막 둑이 무너진 기분이에요."


제주에 사상 처음으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내려진 5일 아침 회색빛 먼지층이 제주 도심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제주 어디서든 볼 수 있었던 한라산은 희뿌연 먼지로 인해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날 출근길·등굣길에 나선 직장인과 학생들은 포근한 봄 날씨에 옷차림은 가벼웠지만,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무거웠다.
5일 오전 8시 현재 제주권역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69㎍/㎥, 미세먼지(PM10) 농도는 평균 107㎍/㎥로, '나쁨' 기준(초미세먼지 36㎍/㎥ 이상, 미세먼지 81㎍/㎥ 이상)을 훌쩍 넘어섰다.
제주시 이도동의 경우 4일 자정을 기해 초미세먼지 128㎍/㎥, 미세먼지 171㎍/㎥ 수준까지 치솟기도 했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는 당일 오후 4시(16시간)까지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가 50㎍/㎥를 초과하고 다음 날(24시간)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가 50㎍/㎥를 넘을 것으로 예보될 때 발령된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김모(17)군은 "마스크를 써도 답답하고, 마스크를 벗어도 숨을 못 쉴 것 같다"며 "빨리 미세먼지가 물러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직장으로 출근하는 강모(41·여)씨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너무 우울했다"며 "큰 공장이나 변변한 산업시설이 없는 제주도에서 미세먼지 농도가 이 정도까지 올라간 것은 중국의 영향이 가장 큰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늘 내일이 지나 대기 질이 좋아진다고 해도 며칠 후면 또다시 미세먼지 재앙이 닥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화가 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상 첫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내려졌음에도 거리에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도민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등굣길에 오른 학생 중 상당수도 마스크 없이 무방비 상태로 학교로 향했다.
정부제주지방합동청사와 제주도청, 제주시청 출입구에는 차량2부제를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졌다.
제주도는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에 따라 이날 처음으로 미세먼지 비상저감 조치를 발령, 도내 모든 행정·공공기관에서 차량 2부제를 실시했다.
일선 공무원들과 제주대학교, 제주대 병원 등 공공기관 직원들은 전날 오후 늦게 첫 미세먼지 저감조치 공지를 받고 어찌해야 할 지를 몰라 혼란을 겪기도 했다.
한 공무원은 "바쁜 일과시간을 마무리할 때쯤 관련 공지를 받아 제대로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며 "나중에 관련 기사를 찾아보고 나서야 행동요령을 숙지했다"고 털어놨다.

이날 일부 공공기관에는 차량번호 끝자리가 홀수 차량만 운행이 가능함에도 몇몇 짝수 번호 차량이 눈에 띄기도 했다.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은 청정지대라 생각했던 제주에서도 미세먼지의 공습을 받자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제주공항에서 만난 관광객 이모(29·여)씨는 "제주도에 와서도 미세먼지로 곤욕을 치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마지막 보루, 둑이 무너진 기분"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지난 일요일만 하더라도 제주의 미세먼지 수준이 '보통'이었는데 하루 만에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농도가 100㎍/㎥을 훌쩍 넘어섰다"며 "차량 2부제와 같은 대책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bjc@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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