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이 사라졌다"…제주마저 삼킨 미세먼지(종합)

입력 2019-03-05 13:47   수정 2019-03-05 18:30

"한라산이 사라졌다"…제주마저 삼킨 미세먼지(종합)
출근길·등굣길 고통 호소…"숨을 못 쉬겠다. 빨리 물러갔으면"
제주, 사상 첫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혼란 속 시행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백나용 기자 = "청정 제주마저…마지막 둑이 무너진 기분이에요."
제주에 사상 처음으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내려진 5일 아침 회색빛 먼지층이 제주 도심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제주 어디서든 볼 수 있었던 한라산은 희뿌연 먼지로 인해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날 출근길·등굣길에 나선 직장인과 학생들은 포근한 봄 날씨에 옷차림은 가벼웠지만,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무거웠다.
5일 낮 12시 현재 제주권역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77㎍/㎥, 미세먼지(PM10) 농도는 평균 123㎍/㎥로, '나쁨' 수준(초미세먼지 36∼75㎍/㎥, 미세먼지 81∼150㎍/㎥) 상단에 위치했다.
제주시 이도동의 경우 4일 자정을 기해 초미세먼지 128㎍/㎥, 미세먼지 171㎍/㎥ 수준까지 치솟기도 했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는 당일 오후 4시(16시간)까지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가 50㎍/㎥를 초과하고 다음 날(24시간)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가 50㎍/㎥를 넘을 것으로 예보될 때 발령된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김모(17)군은 "마스크를 써도 답답하고, 마스크를 벗어도 숨을 못 쉴 것 같다"며 "빨리 미세먼지가 물러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직장으로 출근하는 강모(41·여)씨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너무 우울했다"며 "큰 공장이나 변변한 산업시설이 없는 제주도에서 미세먼지 농도가 이 정도까지 올라간 것은 중국의 영향이 가장 큰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늘 내일이 지나 대기 질이 좋아진다고 해도 며칠 후면 또다시 미세먼지 재앙이 닥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화가 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상 첫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내려졌음에도 거리에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도민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등굣길에 오른 학생 중 상당수도 마스크 없이 무방비 상태로 학교로 향했다.
정부제주지방합동청사와 제주도청, 제주시청 출입구에는 차량 2부제를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졌다.

제주도는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에 따라 이날 처음으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발령, 도내 모든 행정.공공기관에서 차량 2부제를 실시했다.
전날 오후 5시 발령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에 따라 제주도 내 행정·공공기관 임직원은 차량 2부제를 의무적으로 적용받는다. 민원인은 자율 준수 대상이다.
하지만 이날 행정·공공기관에는 차량 2부제 규제 대상인 짝수 번호 차량이 평소와 다름없이 주차돼 있었다.
이날 오전 방문한 제주대학교와 제주대 병원은 차량 2부제 시행을 알리는 표시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또 끝자리 짝수 번호인 등록 차량이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학교와 병원에 출입하고 있었다. 등록 차량은 교직원 차량이 대부분이다. 교직원 주차장에도 짝수 번호 차량이 다수 눈에 띄었다.
대학에서 차량 요금을 받는 A씨는 "오늘 차량 2부제를 시행한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학 총무과 직원 B씨는 "전날 공문을 늦게 받아 계획을 수립하는 데 시간이 걸려 당장 비상저감조치를 시행하지 못했다"며 "다음부터 차량 2부제 등을 정부 방침대로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오전 제주지방법원 주차장에도 '금일 홀수 차량만 출입 가능'이라는 알림이 무색하게 짝수차량이 다수 주차돼 있었다.
본래 임직원 차량 진입이 불가한 도청과 시청의 경우 주차된 차량 상당수의 끝자리가 짝수 번호인 차량으로 민원인의 자율적인 참여도 저조한 상태다.

일선 공무원들과 제주대학교, 제주대 병원 등 공공기관 직원들은 전날 오후 늦게 첫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공지를 받고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혼란을 겪었다.
제주시청의 한 직원은 "바쁜 일과시간을 마무리할 때쯤 관련 공지를 받아 제대로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며 "나중에 관련 기사를 찾아보고 나서야 행동요령을 숙지했다"고 털어놨다.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은 청정지대라 생각했던 제주에서도 미세먼지의 공습을 받자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제주공항에서 만난 관광객 이모(29·여)씨는 "제주도에 와서도 미세먼지로 곤욕을 치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마지막 보루, 둑이 무너진 기분"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지난 일요일만 하더라도 제주의 미세먼지 수준이 '보통'이었는데 하루 만에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농도가 100㎍/㎥을 훌쩍 넘어섰다"며 "차량 2부제와 같은 대책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세먼지에 안개까지 겹치면서 가시거리가 크게 줄자 이날 오전 한때 제주와 청주를 오가는 항공기들이 결항 되기도 했다.

한편 제주도는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에 따라 먼지 발생 억제를 위해 교통혼잡지역 등에 대해 도로청소 차량과 살수 차량 운행을 확대했다.
도는 또 다량대기 배출사업장과 공사장 등 275개소에 대해 배출허용기준 준수와 살수시설 이행실태 등에 대해 집중단속을 하고 있다.
제주도교육청은 이날 오전 각 학교에 학교장 판단에 따른 수업 단축과 휴업 등을 검토하고, 실시 현황을 보고하도록 했다.
dragon.m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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