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못 쉬겠다. 빨리 물러갔으면"…관광객도 마스크 차림
비상저감조치 혼란 속 첫 시행…내일도 발령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전지혜 백나용 기자 = "청정 제주마저…마지막 둑이 무너진 기분이에요."
회색빛 먼지층이 제주 도심을 통째로 집어삼킨 5일 제주에서는 처음으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돼 차량 2부제 등이 시행됐다.
도민과 관광객들은 어딜 가나 나쁜 대기질과 희뿌연 풍경에 온종일 답답해했다.
◇ 미세먼지·초미세먼지 주의보 발령…자취 감춘 한라산
제주도 전역에는 지난 4일 정오를 기해 초미세먼지(PM2.5) 주의보가 발령됐다. 같은 날 오후 6시를 기해 미세먼지(PM10) 주의보도 내려졌다.
5일 오후 5시 기준 제주권역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88㎍/㎥로 '매우 나쁨'(76㎍/㎥ 이상), 미세먼지(PM10) 농도는 140㎍/㎥로 '나쁨'(81∼150㎍/㎥) 수준을 보이고 있다.
제주도 어디서든 볼 수 있었던 한라산은 짙은 미세먼지에 자취를 감췄다. 제주 어느 지역을 가도 희뿌연 풍경에 답답한 모습을 보였다.
기침, 눈 통증 등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김모(17)군은 "마스크를 써도 답답하고, 마스크를 벗어도 숨을 못 쉴 것 같다"며 "빨리 미세먼지가 물러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모(41·여)씨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너무 우울했다"며 "큰 공장이나 변변한 산업시설이 없는 제주도에서 미세먼지 농도가 이 정도까지 올라간 것은 중국의 영향이 가장 큰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늘 내일이 지나 대기 질이 좋아진다고 해도 며칠 후면 또다시 미세먼지 재앙이 닥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화가 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제주도, 비상저감조치 혼란 속 첫 발령…내일도 발령
제주도는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에 따라 지난 4일 오후 5시를 기해 처음으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발령했다
비상저감조치는 당일 오후 4시(16시간)까지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가 50㎍/㎥를 초과하고 다음 날(24시간)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가 50㎍/㎥를 넘을 것으로 예보되면 발령된다.
도는 비상저감조치에 따라 이날 도내 모든 행정·공공기관에서 차량 2부제를 실시했다. 먼지 발생 억제를 위해 교통혼잡지역 등에 대해 도로청소 차량과 살수 차량 운행을 확대했다.
다량대기 배출사업장과 공사장 등 275개소를 대상으로 배출허용기준 준수와 살수시설 이행실태 등에 대한 단속도 벌였다.
안전 문자 메시지를 통해 "실외활동을 자제하고 외출 시에는 미세먼지 전용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제주도교육청 역시 각 학교에 실외활동을 하지 말고 실내 공기 질을 관리하도록 했다. 또 학교장 판단에 따라 수업 단축이나 휴업 등을 검토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날 거리에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도민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등굣길 학생 중 상당수도 마스크 없이 무방비 상태로 학교로 향했다.
정부제주지방합동청사와 제주도청, 제주시청 출입구에는 차량 2부제를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졌지만 차량 2부제 규제 대상인 짝수 번호 차량이 평소와 다름없이 주차돼 있었다.
이날 오전 제주대학교와 제주대병원에서는 차량 2부제 표시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또 끝자리 짝수 번호인 등록 차량이 제지 없이 출입하고 있었다. 등록 차량은 교직원 차량이 대부분이다. 교직원 주차장에도 짝수 번호 차량이 다수 눈에 띄었다.
대학 관계자는 "전날 공문을 늦게 받아 계획을 수립하는 데 시간이 걸려 당장 비상저감조치를 시행하지 못했다"며 "다음부터 정부 방침대로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주지방법원 주차장에도 '금일 홀수 차량만 출입 가능'이라는 알림이 무색하게 짝수 번호 차량이 다수 주차돼 있었다.
일선 공무원 등은 전날 오후 늦게 비상저감조치 공지를 받고서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혼란을 겪었다.
제주시청의 한 직원은 "바쁜 일과시간을 마무리할 때쯤 관련 공지를 받아 제대로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며 "나중에 기사를 찾아보고 나서야 행동요령을 숙지했다"고 털어놨다.
제주도는 이날에 이어 오는 6일에도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발령하기로 했다.
◇ 청정지역에 여행 왔는데…관광객들도 마스크 차림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은 청정지역이라 생각했던 제주에서도 미세먼지 공습을 받자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제주공항에서 만난 관광객 이모(29·여)씨는 "제주도에 와서도 미세먼지로 곤욕을 치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마지막 보루, 둑이 무너진 기분"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지난 일요일만 하더라도 제주의 미세먼지 수준이 '보통'이었는데 하루 만에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농도가 100㎍/㎥을 훌쩍 넘어섰다"며 "차량 2부제와 같은 대책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세먼지에 안개까지 겹치면서 가시거리가 크게 줄자 이날 오전 한때 제주와 청주를 오가는 항공기들이 결항하기도 했다.
관광 명소인 제주 서귀포시 성산일출봉 일대에서는 이날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관광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평소 같으면 선명히 보이는 일출봉의 웅장한 모습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었겠지만, 이날은 희뿌옇게 보이는 모습만 볼 수 있었다.
박모(52·제주시)씨는 "타 지역에서 온 형님들을 모시고 여행을 다니고 있는데, 일출봉을 올라갔다 오면 미세먼지를 너무 많이 마시게 돼 몸이 안 좋아질까 봐 등반은 포기하고 주변만 둘러봤다"고 말했다.
박씨는 "대기질이 나쁜 날이 이어지면 관광객들이 한라산 등 숨이 가쁠 정도로 걸어서 다녀야 하는 곳을 여행하기에 애로사항이 있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
ato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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