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대통령에 "인혁당재건위 피해자 구제 국가가 나서야"(종합)

입력 2019-03-06 14:35  

인권위, 대통령에 "인혁당재건위 피해자 구제 국가가 나서야"(종합)
"부당이득금 반환문제 해결 등 '완전하고 신속하게' 조치해야"
靑 "인권위 결정문 접수…대법원 판결 등 종합적으로 살펴볼 예정"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박경준 기자 = 유신정권의 대표적 조작사건인 인민혁명당(인혁당)재건위원회 사건 피해자와 그 유족을 국가가 나서 적극적으로 구제해야 한다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의견을 제시했다.
인권위는 인혁당재건위 사건 피해자들의 고통을 해소하고 국가의 국민 보호책임을 실현하기 위해 완전하고 효과적인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표명했다고 6일 밝혔다.
인혁당재건위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는 사법부 판단과 별개로, 행정부 수반이자 국가 책임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의견표명을 결정했다고 인권위는 설명했다.
이번 의견표명은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피해자와 유족이 대법원의 잘못된 판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4·9통일평화재단이 국가를 상대로 낸 진정에서 비롯됐다.
재단 측은 "피해자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고,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1, 2심 판결에 따라 일부 배상금을 가지급 받았다"며 "그런데 대법원이 판례를 뒤집어 피해자들이 돈을 반환해야 할 처지가 됐다"고 진정을 제기했다.
재단 측은 "가해자인 국가가 피해자들의 재산에 대한 압류·경매 처분을 시도하면서 또다시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주고,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인권위는 이 사건이 국가인권위원회법상 조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진정을 각하했다.
하지만 가해자인 국가가 피해자들의 보호와 권리 회복을 위한 기본 책무를 방기한 채 적절하고 신속한 구제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보고 의견을 내기로 결정했다.
인권위는 "국가폭력과 형사사법 절차 남용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고통은 최초 국가폭력에 의한 생명권과 신체의 자유 박탈에서 시작해 경제적 불이익과 사회적 멸시로 인한 차별로 이어졌다"며 "진실이 규명된 현재에도 피해자들은 경제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봤다.
인권위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결과의 적절성을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국가가 법원의 판결을 이유로 이렇게 누적돼 온 피해에 대해서는 구제책임을 외면한 채 강제집행으로 피해자들에게 경제적 고통을 가하고 있다"며 "이는 중대한 인권침해의 당사자였던 국가가 올바르게 반성하는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고, 형평과 정의에도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이번 인권위 의견표명과 관련해서 진정인인 4·9통일평화재단은 "피해자들은 그동안 원금 반환은 물론 연 20%씩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 채무로 극심한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며 "문 대통령은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여 인혁당재건위 사건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압류, 강제경매 등 반환금 환수 조치를 즉각 취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권위의 의견표명에 대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인권위 결정문을 접수했다"며 "본 사안은 대법원 확정판결에 관한 것이므로 대법원 판결문, 인권위 결정문, 피해자들이 처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살피겠다"고 밝혔다.
인혁당재건위 사건는 1974년 중앙정보부가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 배후에 인혁당재건위가 있다고 주장하며 시작된 대표적 공안 조작사건이다.
그 뿌리는 1964년 8월 14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수사결과를 발표한 인혁당 사건이다. '북한 노동당의 지령을 받고 반정부 조직인 인혁당을 결성한 57명 중 41명을 구속하고 16명은 수배 중'이라는 게 당시 중정 발표의 요지였다.
일부 검사들이 사표를 던지며 무리한 기소에 저항했지만 도예종 씨 등 13명은 결국 재판에 넘겨져 이듬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른바 '1차 인혁당 사건'의 요지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974년 중정은 유신반대 투쟁을 벌인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 배후로 인혁당재건위를 지목하고 1차 인혁당 사건 연루자를 다시 잡아들였다. 인혁당재건위 사건이 '2차 인혁당 사건'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이유다.
이듬해인 1975년 대법원은 1차 인혁당 사건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도 씨 등 8명의 사형을 선고했고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피해자들은 항변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이다.
스위스 국제법학자협회는 이에 '사법사상 암흑의 날'이라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사법 살인'으로 불린 인혁당재건위 사건 유족들은 2002년 법원에 재심신청을 하고 2007∼2008년 무죄를 선고받았다.
2005년 12월 인혁당재건위 사건을 재조사한 국가정보원 과거사위원회는 정당성이 모자라는 독재정권이 공포 분위기 조성을 위해 사건을 조작하고 국가 형벌권을 남용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so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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