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서 12년 버틴 한국인, 'IT공룡' 속살 드러내다

입력 2019-03-07 06:29  

아마존서 12년 버틴 한국인, 'IT공룡' 속살 드러내다
'문짝책상' 쓰고 광고·파워포인트 없는 회사…비용은 고객 위해 우선 지출
신간 '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세계 최대 기업 아마존은 직원들의 평균 근속 기간이 1년을 조금 넘는다. 해고가 자유로워 무능함이 드러나면 바로 책상이 없어지는 데다 워낙 경쟁이 치열해 스스로 그만두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려 12년을 아마존에서 생존해낸 한국인이 있다. 이는 상위 2% 수준이라고 한다. 현재는 자기 사업을 하는 박정준 씨다.
신간 '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한빛비즈)는 이런 박 씨의 정글 생존기를 담았다. 저자의 인생 이야기지만 아마존 스토리기도 하다. 입사부터 퇴사 과정까지 많은 사람이 다니고 싶어하는 직장, 아마존의 숨겨진 얘기들을 흥미롭고 자세하게 풀어낸다.
책장을 넘겨나가면서 이래서 아마존이 정상에 올랐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단 하나도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는 제프 베이조스의 철두철미한 경영 철학이 아마존 사내 곳곳에 배어있다.
우선 아마존은 '짠돌이 회사'다. '도어 데스크'를 아는가. 문짝을 떼어 만든 책상을 뜻한다. 베이조스가 창업 당시 집 차고에 사무실을 차리고 집 문짝을 떼어 책상으로 쓴 일화에서 유래했다. 지금도 그 책상을 본뜬 길쭉한 도어 데스크를 인턴부터 회장까지 모두 똑같이 사용한다. 아마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이런 책상을 사용할까. 베이조스가 언론에 "도어 데스크야말로 검소함의 상징"이라고 밝힌 것처럼 도어 데스크는 아마존 정신을 대변한다. 아마존 정신이란 '커스터머 퍼스트' 정신이다. 회사가 아니라 고객을 위해 돈을 쓴다는 것이다.
모든 사원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같은 책상을 쓴다는 것은 계급 격차나 거리를 없애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회사 식당도 다른 정보기술(IT) 기업과는 다르다. 구글, 페이스북 같은 회사는 '사원 만족'에 방점을 두고 비싼 음식과 음료를 제공하고 휴게실 같은 복지도 굉장히 잘 돼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아마존 구내식당은 전혀 다르다. 기본 점심 메뉴는 보통 10달러가 넘고 식당은 회사가 아니라 외주 업체에서 운영한다. 구글, 페이스북은 최고의 인재를 영입하는 데 비용을 투자한다는 철학을 가진 반면 아마존은 그런 돈을 아껴서 고객에게 쓴다는 마인드다. 다만 모든 재료가 유기농이란 점은 '건강 우선', '자연 친화' 원칙을 반영한다.
아마존은 드립커피와 차만 공짜로 주고 이마저도 일회용 컵 낭비를 막고자 공용 머그컵을 쓰도록 한다. '절약, 효율, 자연친화' 가치가 담긴 방침이다. 음료수는 자판기에서 사 먹어야 하는데, 심지어 전기를 아끼려고 자판기 전구를 모두 빼버렸다.
출퇴근 시간은 매우 유연하다. 평가 기준이 전적으로 업무 수행 능력에 있어서다. 그래서 업무를 언제 하는지는 대체로 상관없지만, 일을 잘 못 하거나 불성실하면 가차 없이 해고된다.
육아휴직은 '아빠'에겐 없었고 '엄마'에게도 동종 업계에서 턱없이 짧았지만, 뉴욕타임스에서 비판 기사를 쓴 이후 복지 수준이 향상되고 있다고 저자는 전한다. 다만 물류창고 직원들에 대한 비인간적 대우에 대한 기사가 난 이후엔 로봇을 늘리는 쪽으로 대응해 '아마존답다'는 평가가 나왔다.
아마존이 이베이 같은 경쟁자를 누르고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세계 최대 IT 기업을 넘어 세계 최대 부자 기업이 된 가장 큰 성공 원인은 '고객 중심' 마인드를 바탕으로 한 검색 서비스 차별화다.
이베이의 경우 같은 제품이라도 100명의 다른 판매자가 팔면 100개의 페이지가 존재하지만, 아마존은 판매자가 많아도 각 제품이 아마존 안에서만큼은 하나의 제품번호와 고유 페이지를 받도록 알고리듬을 개편했다.
상당히 복잡하고 품이 많이 들며, 오류가 날 경우 개선에 큰 노력이 들어야 하는 위험도와 부담이 큰 작업이었지만, '고객 우선' 정신이 먼저였고, 고객들은 아마존의 정성에 반응했다.
'개인화'도 주목할 부분이다. 아마존에서 속옷을 하나 살 경우 이후 아마존 앱에 접속할 때마다 속옷 상품들이 자꾸 떠서 민망했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고객은 관심 있는 상품들이 자동으로 진열돼 좋고 아마존은 구매 전환율을 올려서 이득이 된다.



아마존이 고객 데이터를 활용하는 자세도 특별하다. 이러한 개인 데이터 수집은 고객에게 불쾌감과 불안함을 주는데, 아마존은 이를 숨기기보다는 오히려 당당하게 공개하면서 '정면돌파'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대신 민감한 개인 정보는 입력 단계부터 철저히 암호화해 저장함으로써 관리자조차 볼 수 없게 했다. 세계 최강 미 해군이 이 시스템을 활용할 정도니 안심할 만하다.
아마존의 기업 문화는 사실 남의 말 하기 좋아하고 남을 신경 쓰는 한국인들이 적응하기 쉽지 않다.
베이조스 회장은 향수 냄새를 싫어할 만큼 내실을 중시한다. 그래서 TV 광고와 같은 마케팅을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특히 브랜드 광고는 전무하다. 여기에 들어갈 돈을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쓰는 게 고객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파워포인트'도 안 쓴다. 화려하기만 할뿐 알맹이 없는 발표 방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발표자를 위한 것이지 청중을 위한 방식은 아니라는 얘기다. 따라서 아마존은 모든 내용을 6쪽 분량의 글로 표현하는 발표 보고서 표준을 만들었다. 이 방식은 발표자는 불편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듣는 사람은 내용을 꼼꼼히 알 수 있다.
사업이나 제품 구상 보고서를 '기사 형식'으로 쓰도록 하는 것도 흥미롭다. 항상 수요자 관점에서 생각하라는 뜻이다.
우리 기업에서 참고했으면 할 채용 평가 방식도 있다.
저자는 '완벽 스펙'을 보유한 한국 대기업 출신 지원자를 면접하면서 코딩 문제를 냈고 이 지원자는 여러 방식 중 가장 훌륭한 방법으로 단박에 풀어냈다.
마음에 든 저자는 최고점을 줘서 다음 단계로 올렸는데 두 번째와 세 번째 면접관은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과 소통 능력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떨어뜨렸다.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서로 소통하면서 단계적 접근을 하는 창의적 인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lesli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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