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거래대금 부풀려 기업자금 유출…조세피난처에 재산 은닉
국세청, 중견기업 사주 등 과세 사각지대 탈세 혐의 유형 공개
(서울·세종=연합뉴스) 민경락 김경윤 기자 = 수천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보유한 부동산 임대업자 A씨는 자신의 법인 소유 재산 중 하나인 빌딩을 딸에게 넘겨주기로 마음먹었다.
문제는 세금이었다. 건물 시가가 100억원 수준이었기 때문에 증여세도 상당할 것이 뻔했다.
딸에게 현금을 주고 그 돈으로 빌딩을 사도록 하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딸의 경제적 능력을 생각하면 과세당국이 자금 출처를 의심할 것 같았다.
A씨는 주변 전문가의 조언을 참고해 자신만의 탈세 수법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묘안'을 짜내기에 이르렀다.
A씨는 딸에게 건물을 30억원에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시가의 30% 수준에 불과했고 건물 임차인이 낸 임대보증금 총액(40억원 내외)보다도 적은 금액이었다.
딸이 내야 할 빌딩 구매대금 30억원은 A씨가 임대법인으로부터 받은 토지 임차보증금을 줄여 충당해주기로 했다.
명목상 건물 소유법인이 A씨에게 내야 했던 임차보증금을 80%나 줄여 결국 새 건물 소유주인 딸에게 수십억원의 구매자금을 마련해준 셈이다.
하지만 이런 치밀한 A씨의 전략도 과세당국의 감시망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국세청은 A씨를 상대로 재산 형성 과정까지 들여다보는 전방위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
국세청이 7일 공개한 중견 고소득 대재산가의 주요 탈세 혐의 유형을 보면 일부 대기업 총수 뺨치는 지능적 탈세가 대다수다.
한 기업 사주는 자본잠식 상태의 미국 현지 법인에 투자금 등 명목의 자금을 보낸 뒤 현지 법인에 허위 비용을 계상해 기업자금을 빼냈다.
이 자금은 현지에 사는 자녀의 유학비와 체재비에 쓰였다. 일부는 해외 부동산 취득 자금으로도 사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아무런 역할이 없는 해외 위장계열사를 세워 거래 과정에 끼워놓고 비자금을 조성한 사주도 있었다. 일부 대기업의 단골 꼼수로 꼽히는 이른바 '통행세'다.
한 사주는 배우자에게서 증여받은 해외 부동산을 은밀히 처분하기 위해 케이만군도 등 조세회피처의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언니에게 명의신탁했다.
결국 양도소득은 신고하지 않았고 양도차익은 증여세 없이 아들에게 모두 현금으로 넘겨줬다.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편법 증여 혐의도 다수 포착됐다.
한 사주는 중학교·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자 명의로 결손법인을 사들인 뒤 이 법인에 자신이 소유한 고가의 부동산을 증여했다. 자신이 소유한 다른 기업도 부동산을 헐값으로 손자의 법인에 양도하도록 했다.
결국 결손법인이었던 손자의 법인은 주식 가치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이 자금은 고스란히 손자들의 경영권 승계 자금이 됐다.
현금 거래를 주로 하는 한 사주는 무자료 매입·매출을 반복하며 거액의 소득을 탈루했다.
그는 이 돈으로 자녀 등 가족 명의로 다수의 부동산을 사들였다. 자금 출처 소명이 걱정된 그는 고의로 부동산에 거액의 근저당을 설정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국세청은 이들 중견기업 사주, 부동산재벌 등 95명에 대해 전격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조사 결과 고의적·악의적 수법 등으로 명백한 조세 포탈이 확인되면 검차 고발 등 엄정히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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