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내 엄마를 보며 그 의미를 짐작해보지만, 결국 그 삶은 내게 낯설게만 남는다.
다른 시간과 다른 세대를 살고 있어 피가 통함에도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친애한다'.
백수린 작가의 신작 중편 '친애하고, 친애하는'(현대문학)은 누군가의 엄마이거나 혹은 딸로 살아왔고, 또 살아가는 모든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공대를 휴학 중인 나는 집보다 일이 우선인 엄마가 서운하면서 한편으로는 부족한 자신을 엄마가 마땅치 않아 할까 봐 기죽어 있다.
어린 시절 유학을 떠난 엄마를 대신해 나를 살뜰히 키워준 할머니.
나는 할머니와 함께 지내며 사랑 없는 결혼을 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부모의 꿈을 대신 살기 위해 엄마가 자신을 두고 유학 갔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점차 서운한 감정을 털어낸다.
하지만 고등교육을 받은 엄마와 배우지 못한 할머니가 어색한 관계를 떨쳐내지 못하듯, 나 또한 완벽하게만 보이는 엄마와 거리를 좁히기 힘들다.
그러던 내게 아들 '무구'가 찾아오고, 나는 엄마로서의 삶을 살며 마침내 엄마와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백수린 작가는 8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세 모녀가 갈등을 극복하지는 못하지만 좀 더 가깝게 다가가는 이야기"라고 이번 소설을 설명했다.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아온 세 사람은 끝내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지만, 작가는 "그것이 바로 인간"이라고 말한다.
"서로 이해하며 갈등을 극복한다는 것은 환상이라고 생각해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해 이번 소설에서 그 점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불문학을 전공한 백 작가는 20세기 프랑스 여성 작가들의 자전적 이야기 속 그들과 부모와의 관계를 보며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그들은 아빠는 자신을 넓은 세계를 이끌어줄 사람으로 생각해 동경하지만, 엄마는 부족한 사람이나 극복의 대상으로 봤다.
백 작가는 "모녀간의 관계는 이처럼 복합적이고 특수한 '애증'의 관계"라며 "20세기 프랑스 사회와 21세기 한국 사회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제목에서 반복되는 '친애하다'라는 단어는 그런 면에서 이번 소설의 주제를 잘 나타낸다.
"전부터 '친애하다'라는 단어가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사랑하다' 와 비교할 때 예의 바른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그런 점이 엄마와 딸의 관계를 잘 보여주죠. 가깝지만 한편으로는 멀고, 굉장히 특별한 감정이지만 격식을 차릴 수밖에 없는,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잘 나타낸 단어라고 느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허구지만, 백 작가는 자신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이번 소설에 담아냈다.
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손녀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 속에 작가 자신과 가족, 할머니들과의 내밀한 '친애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다만 그는 이번 소설이 세 모녀의 이야기에만 국한되지 않고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로까지 확장해 읽혔으면 한다고 바랐다.
"함께 참외나 수박씨를 아무 데나 뱉을 수 있는 할머니 세 분의 관계를 그리면서 즐거웠어요. 이상적인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사는 것 만이 정상 가족을 이루는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결국 정상성에 대한 기대는 환상인 거죠. 가족 같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동체의 가능성 등에 관심을 가지며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백 작가의 다른 소설들이 그렇듯 이번 소설 또한 등장인물 모두가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소설에 늘 따스함이 스며 있다고 강조한다.
"소설은 타인과 소통하고자 쓰는 것인데 세상을 어둡게 보며 '다 부질없다'고 한다면 쓸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어떻게든 사람에게, 그리고 이 세상에 긍정적인 점이 있다는 메시지를 소설 속에 담으려 노력합니다."
그런 점에서 엄마가 된 내가 할머니의 젊을 적을 상상하는 마지막 장면은 우리를 엷게 미소 지은 채 책을 덮게 할 만하다.
'나는 아랫배를 노크하는 것 같은 규칙적인 태동을 느끼며 할머니가 기억하는 (…) 여름을 상상했다. 그런 완벽한 여름의 어떤 날, 연노란색 태양이 아직 머리 꼭대기에 있었을 때, 달궈진 모래를 맨발로 밟고 걷다가 무언가에 이끌린 듯 옷을 벗고 바닷물로 뛰어드는 알몸의 여자와 그 옆에 서 있던, 세월이 좀 더 흐르고 나면 그런 엄마가 부끄러워지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수평선을 향해 달려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는 어린 여자아이를.'(126∼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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