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색 수의 입고 피고인으로 첫 재판 출석해 격정 토로
"재판거래 통해 정치권력과 유착? 檢의 가공 프레임…여론전 끝났다"
검찰 압수한 USB에 '위법수집 증거' 주장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이보배 기자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법정에서 검찰의 수사와 공소사실을 "가공의 프레임"이라고 정면 비판하면서 치열하게 무죄를 다툴 뜻을 밝혔다.
임 전 차장은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정식 공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해 그간 수사를 받은 입장과 향후 재판에 임하는 자세를 10분간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양승태 사법부가 '적폐의 온상'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면서 검찰의 수사와 공소사실을 격정적인 어조로 반박했다.
그는 우선 "지난 8개월간 사법행정 전반에 대해 진행된 검찰의 전방위 수사로 연일 고초를 겪거나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동료 법관과 법원 가족에게 단초의 일단을 제공한 사람으로서 죄송하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다만 지난 시기 양승태 사법부가 검찰이 단정하듯 재판거래와 재판 관여를 일삼는 터무니없는 사법 적폐의 온상으로 치부돼선 안 된다"며 "지난 시기 사법부에서 사법행정을 담당한 모든 법관을 인적 적폐 청산의 대상으로 삼아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임 전 차장은 검찰이 기소한 자신의 공소사실은 정면으로 부정했다.
그는 우선 '재판거래' 혐의에 대해 "지난 시기 사법부가 이른바 재판거래를 통해 정치 권력과 유착했다는 것은 결코 사실이 아닌 가공의 프레임"이라며 "검찰이 수사와 공소장을 통해 그려놓은 경계선은 너무 자의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법원행정처가 하는 일 중엔 할 수 있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의 경계선이 뚜렷하지 않다"며 "재판 독립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이지만 사법부 독립이라고 해서 유관 기관과의 관계를 단절한 채 유아 독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사법부를 위해 원만한 관계를 설정하고 유관 기관과 상호 간 협조를 구하는 역할을 부득이 행정처가 담당할 수밖에 없다"면서 "정치 권력과 유착하는 것과 일정한 관계를 설정하는 건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재판 관여' 혐의도 반박했다.
그는 "법원행정처는 다양한 행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일선 법원의 주요 재판을 모니터링할 수밖에 없다"며 "부득이 의견을 개진하거나 재판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것이 일선 법관의 양심을 꺾거나 강제로 관철한 건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법원행정처 내에서 작성한 각종 보고 문건에 대해서도 "여러 가능한 방안을 브레인스토밍하듯 아이디어 차원에서 작성한 것으로서, 이슈를 확인하고 적절한 방안을 찾아가기 위한 내부 문서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검찰·청와대를 비롯해 어느 조직이나 단체에서도 능히 할 수 있는 내부 검토로, 개인으로 비유하자면 일기장"이라면서 "그것이 바로 직권남용으로 연결된다는 검찰 논리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화가 '페테르 루벤스'의 성화(聖畵)인 '시몬과 페로(로마인의 자비)'를 예로 들기도 했다. 그는 "이 그림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영락없는 '포르노'이지만 실상은 성화"라며 "피상적으로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고,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임 전 차장은 진술 말미에 "그동안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펼친 피의사실 공표를 통한 일방적인 여론전은 이제 끝났다"며 지난 수사 과정에서 벌어진 각종 언론 보도 등에 대한 유감도 표했다.
그는 "여론몰이식 보도와 빗발치는 여론의 비판 속에 변명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여기까지 왔다"면서 재판부에 "공소장 켜켜이 쌓여 있는 검찰발 미세먼지로 형성된 신기루에 매몰되지 말고 무엇이 진실인지 충실히 심리해달라"고 호소했다.
임 전 차장은 재판을 집중심리로 진행하겠다는 재판부의 입장에는 "막강한 공격 화력을 보유한 검찰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졸속 재판으로 전락해 '검찰 사법화'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방어권 보장을 위해 기일을 합리적으로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에 대한 임 전 차장 측 의견을 들은 뒤 검찰 증거에 대해서도 동의 여부를 확인했다.
이에 임 전 차장은 상당수 증거를 동의하지 않겠다면서 특히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검찰이 압수한 USB에 대해 '위법수집 증거'라며 증거 사용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USB 압수가 위법한 만큼 그 안에서 나온 문서들을 토대로 다른 법관들에게서 받은 진술은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독수독과(毒樹毒果·위법수집 증거 배제 법칙)' 주장이다.
검찰이 영장 열람 기회를 충분히 주지 않았고, 영장에는 압수 대상이 '전자정보'라고 기재돼 있었는데 유형물인 USB를 가져간 데다, 사실상 압수수색 절차가 종료된 후 변호인이 도착해 입회권을 보장받지 못했다는 게 임 전 차장 의견이다.
검찰은 그러나 USB에 대한 압수수색은 적법 절차에 따라 이뤄졌고, 그 안에 저장돼 있던 파일 전체도 적법하게 임의제출 받았다며 문제가 없다고 맞섰다.
s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