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병행' 거두고 '토털솔루션' 꺼낸 비건…빅딜로 원점회귀

입력 2019-03-12 06:59   수정 2019-03-12 13:47

'동시·병행' 거두고 '토털솔루션' 꺼낸 비건…빅딜로 원점회귀
1월말 강연서 '단계적 접근' 시사→"트럼프식 접근법 열렬 지지"
"과거 정부 실패 답습않겠다" 일괄타결 압박…'올 오어 낫싱' 대치 우려도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의 미국 측 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11일(현지시간) "점진적 비핵화는 없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전면적이고 완전한 해법을 의미하는 '토털 솔루션'(a total solution)을 전면에 내걸었다. 대량살상무기(WMD)의 완전한 제거와 제재해제 등 상응조치를 일거에 맞교환하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빅딜 원칙은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이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슈퍼 매파' 볼턴 보좌관의 입을 통해 소개된 바 있지만, 이날 발언은 북한과의 실무협상을 주도해온 '키맨'이 이를 미국의 '포스트 하노이' 대북협상 전략으로 공식화한 것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로써 트럼프 행정부는 단계적 해법으로 선회하는 듯했던 흐름을 거둬들이고 돌고 돌아 지난해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전 북미대화 국면 초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내걸었던 빅뱅식 일괄타결 원칙으로 다시 돌아가게 됐다.
비건 특별대표는 이날 워싱턴DC에서 카네기 국제평화기금이 주최한 핵 정책 콘퍼런스 좌담회에 참석해 "우리는 비핵화를 점진적으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 점을 분명히 했다면서 "미 행정부가 완전하게 일치를 보고 있는 지점"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북한의 부분적 비핵화 제안, 즉 영변 핵폐기 카드를 수용, 제재해제를 그 상응 조치로 내놓을 경우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꼴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비건 특별대표는 "우리는 '토털 솔루션'을 원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테이블에서 김 위원장에게 "더 통 크게 가라', '우리와 함께 가기 위해 비전을 믿어라'고 주문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비건 특별대표가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첫 공개무대인 이날 자리에서 확인한 빅딜 원칙은 발언은 그가 1월 31일 스탠퍼드 대학 강연에서 밝혔던 기조를 상당 부분 뒤집는 것이다. 스탠퍼드 대학 강연은 비건 특별대표가 지난해 8월 임명된 뒤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발언을 한 자리였다.
북한과의 본격적인 실무협상에 임하면서 단계적 접근 방법을 열어두며 한층 유연성을 발휘, 협상 타결 기대를 높였던 비건 특별대표가 북미 정상의 2차 핵 담판 결렬 후 "점진적 비핵화는 안 한다"고 원점 회귀하며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인 것이다.
비건 특별대표는 카운터파트인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의 '평양 실무담판'을 앞둔 당시 스탠퍼드대 강연을 통해 '동시적·병행적(simultaneously and in parallel)' 기조를 공개적으로 꺼냈었다.
그러면서 협상 초기 미국이 선결 요건으로 내세웠던 '포괄적 핵(核) 신고'에 대해서도 '비핵화 과정이 최종적으로 되기 전' 어느 시점으로 미루는 등 속도 조절을 하면서 사실상 미국이 '단계적 비핵화론'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는 관측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북한이 주장해온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상당 부분 수용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미국민의 안전', '위협 감소'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며 핵 동결 등을 입구로 하는 단계적 프로세스로 좌표를 재설정한 듯 했던 흐름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었다.
비건 특별대표는 이날 좌담회에서 기조 변경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고 북미 정상이 6·12 싱가포르 회담에서 합의한 조항인 '북미 관계 개선', '평화체제 구축', '비핵화' 등은 서로 다 맞물려 있는(linked) 것이라면서 "모든 것이 합의될 때까지는 어떤 것도 합의되지 않는 것"이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관계 개선이나 평화체제 구축 문제에 대한 논의가 어느 정도 진전됐더라도 비핵화 논의가 비슷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다른 부분들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얘기다. "오늘날 당장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에는 (북미간) 간극이 여전히 너무 크다"는 비건 특별대표의 현실 인식에도 불구, 미정부가 일괄타결식 빅딜 해법을 고수키로 한데는 실패한 과거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비건 특별대표는 "트럼프 행정부 입장이 강경해진 게 아니라 처음부터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가 목표였다"면서 전임 행정부들이 겪은 실패의 기록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목표(FFVD)를 달성해야 제재 해제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해왔다"고 못 박았다.
비건 특별대표는 지난 92년부터 시작된 대북협상의 역사를 거론하며 그 실패의 결과로 '오늘날 우리는 한반도에서 핵무기 국가를 갖게 됐다. 정책은 실패했다"고 말했다.
이는 핵 담판 결렬 이후 전면 등판,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볼턴 보좌관의 주장과도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비건 특별대표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법의 열렬한 지지자"라며 두 정상의 '통 큰 결단'에 기댄 하향식(톱다운) 협상 방식에 대한 기대감도 표시했다. 톱다운 방식 역시 실무협상으로부터 시작해 고위 단계로 올라가던 지난 20여년간의 '상향식'(바텀업) 전통을 허문 것이다.
비건 특별대표는 앞서 스탠퍼드 대학 강연 때에도 톱다운 방식의 특수성을 거론하며 기대감을 표출한 바 있다.
미국이 '포스트 하노이' 대북협상 전략의 좌표로 일괄타결식 빅딜론을 설정한 것은 그만큼 북한의 통큰 결단에 대한 압박 차원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전부 아니면 전무'(올 오어 낫싱)식 벼랑 끝 전술이 자칫 대치국면을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hanks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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