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딜 우려 증폭…'피의 역사' 북아일랜드 무력 충돌 재연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 영국 정치권이 유럽연합(EU)과의 브렉시트(Brexit) 합의안을 또 부결시키면서 전 세계 정치경제에 '대혼란'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이번 2차 투표 부결로 영국이 미래 관계 등에 대한 아무런 약정 없이 EU를 떠나는 이른바 '노 딜'(no deal) 브렉시트의 공포도 한층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하원은 12일(현지시간) 브렉시트 합의안 및 '안전장치'(backstop·백스톱) 보완책을 놓고 찬반 투표를 진행해 찬성 242표, 반대 391표로 부결시켰다.
의회 역사상 최대인 230표 차로 부결된 지난 1월 1차 투표 때보다는 표차가 줄었지만, EU와의 합의안에 대해 의회 내에선 여전히 부정적인 인식이 우세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번에도 1차 투표 때와 마찬가지로 안전장치가 발목을 잡았다.
테리사 메이 총리가 전날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과 만나 영국에 안전장치의 일방적 종료 권한을 부여하는 것 등을 핵심으로 하는 보완책에 합의했지만, 의회로부터 만족스럽지 않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여기에는 투표 직전 제프리 콕스 영국 법무상이 안전장치를 일방적으로 종료할 수 있는 합법적인 수단이 없다면서 사실상 보완책의 실효성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안전장치는 영국과 EU가 브렉시트 협상을 할 때도 치열하게 논쟁한 '뜨거운 감자'였다.
현재 아일랜드섬 내 아일랜드와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 사이에는 사실상 국경이 없다. 인적·물적 이동이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이뤄진다.
영국과 EU는 기본적으로 현 상태에 큰 변화를 주긴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다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접점을 찾기 쉽지 않은 견해차가 존재한다.
EU는 애초 협상 과정에서 북아일랜드만 EU 관세동맹에 남기는 방안을 제안했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 물리적 국경을 만들기는 어려우니 아예 아일랜드섬 전체를 현재처럼 EU 단일시장으로 묶어두자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이었다. 북아일랜드만 떼어내 EU에 남기면 사실상 '한 나라 두 경제권'이 돼 국가통합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반해 영국은 EU와의 무관세 무역을 전제로 북아일랜드 국경에 매우 단순한 통행·통관 절차만 두는, 이른바 '보이지 않는 국경'(invisible border) 상태로 두자는 의견을 냈다.
이 역시 영국이 EU 외 국가에서 들여올 때 문제가 될 수 있다. EU 검역 규정 등에 어긋나는 물품이 역내에 반입돼 EU 통관 절차가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EU는 영국의 제안을 거부했다.
영국과 EU는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긋다 작년 11월 현재와 같은 애매모호한 안전장치안에 합의했다.
영국이 이달 29일 EU를 떠나더라도 2020년 12월까지 전환기간으로 설정하되 별도의 합의가 있을 때까지 북아일랜드를 포함한 영국 전체가 당분간 EU 관세동맹에 남는다는 내용이다.
양측은 언제까지 영국을 관세동맹에 남길지, 어떤 조건 아래 안전장치를 폐기할지 등은 구체적으로 합의하지 못했다.
합의안이 공개된 뒤 영국 내에선 브렉시트 찬성파를 중심으로 격렬한 반발이 뒤따랐다.
EU 탈퇴를 원하는 많은 영국인, 특히 집권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파와 야당인 노동당은 안전장치 조항으로 영국이 EU를 탈퇴한 뒤에도 EU 경제권에 예속될 수 있다며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의회 다수를 구성하는 이들의 반발은 두 차례나 큰 표차로 합의안 승인이 좌절된 표면적인 이유다.
영국과 EU 일각에서는 1998년 벨파스트 협정으로 잠복해 있던 북아일랜드 내 오랜 신·구교도 간 갈등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영국이 지배하고 있던 아일랜드가 1949년 영연방에서 완전히 독립할 때 아일랜드계 구교도(가톨릭)보다 영국계 신교도가 많은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남았고 이후 신·구교도 간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1972년 1월엔 영국군이 시위하던 구교도 시민들에게 발포해 14명이 숨지는 최악의 유혈 사태가 빚어졌다. 이에 맞서 구교도는 무장투쟁조직 IRA(북아일랜드공화국군)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테러를 저지르는 등 '피의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반세기 가까운 유혈 충돌은 1998년 영국과 아일랜드가 벨파스트 협정을 맺으면서 가까스로 봉합됐다.
벨파스트 협정은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자유로운 통행과 통관을 보장하는 대신 아일랜드는 북아일랜드 영유권을 포기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 지도상의 경계선만 있을 뿐 실질적인 국경이 없는 것도 이런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산물이다.
브렉시트로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 갑작스럽게 통행·통관의 자유가 사라질 경우 북아일랜드가 다시 유럽의 '화약고'로 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영국과 EU가 불완전하게나마 대체로 현재의 자유 통행·통관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안전장치 이슈를 마무리한 것도 이런 불안 심리를 공유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아일랜드 내에선 브렉시트 이슈로 그동안 잠복해 있던 아일랜드계 구교도들의 독립 욕구가 다시 고조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안전장치 이슈가 20년간 잠자고 있던 북아일랜드 독립 열기를 깨웠다는 것이다.
실제 브렉시트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 1월 북아일랜드에선 폭탄 테러로 의심되는 폭발 사고가 발생했는데 IRA를 자처한 조직이 배후를 주장하고 나서 이런 우려를 증폭시켰다.
현재로선 노 딜 브렉시트의 충격파가 어떤 식으로, 어느 정도 범위로 밀어닥칠지 전혀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적어도 안전장치에 대한 뾰족한 해법이 나오지 않는 한 북아일랜드에서의 폭력적 갈등 표출에 대한 우려는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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