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北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 비난에 폼페이오 "그러면 전 세계가 강도"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하노이 '핵(核) 담판'에서 빈 손으로 돌아온 북한이 미국을 또다시 '강도'(gangster)에 비유하며 긴장 수위를 높였다.
8개월 전 비핵화 후속 협상 과정에서 북미 외교라인 사이에 벌어진 '강도 설전'의 데자뷔로 보인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15일 평양에서 외신 기자들과 외국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긴급 회견을 열어 "미국의 강도 같은(gangster-like) 태도는 결국 상황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AP 통신이 보도했다.
지난달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 도출에 실패한 것은 미국의 강경한 태도 때문이었다고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강도 같은' 또는 '강도적'이라는 표현은 북한 외무성이나 관영 매체들이 대북 제재나 미국의 강경한 비핵화 요구 등을 비판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특히 지난해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마친 뒤 후속 협상 과정에서도 이런 표현이 등장해 북미 사이에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해 7월7일 3차 방북 일정을 마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을 떠나자마자 성명을 내 "미국 측은 싱가포르 수뇌 상봉과 회담의 정신에 배치되게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나왔다"고 맹비난했다.
그러자 폼페이오 장관도 같은 날 일본 도쿄에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마치고 "북한에 대한 우리의 요구가 강도 같은 것이라면 전 세계가 강도"하며 "왜냐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무엇을 성취할 필요가 있는지 만장일치로 결정했기 때문"이라고 맞받아쳤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후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던 와중에 나온 이와 같은 '강도적' 발언 논란은 북미 비핵화 협상의 교착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 중 하나였다.
다만 북한 측은 그때나 지금이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만큼은 비난을 자제하며 대화의 끈을 이어가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년 7월 담화에서 북한 외무성은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심을 아직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했고, 최 부상은 이날 회견에서 "두 최고지도자 사이의 개인적인 관계는 여전히 좋고 궁합(chemistry)은 신비할 정도로 훌륭하다"고 강조했다.
대신 폼페이오 장관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당시와 마찬가지로 최 부상은 이날도 폼페이오 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콕 집어 "적대와 불신의 분위기를 만들어 북미 최고지도자들 사이의 건설적인 협상 노력을 방해했다"고 정면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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