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강간 등 적용 땐 공소시효 25년까지 가능…검·경 수사도 조사 대상
경찰 증거누락·연루 의혹도 규명 필요…"조사단 활동기간 연장해야"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에 대한 2013년∼2014년 당시의 검찰과 경찰 수사가 부실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사건을 원점에서 신속히 재수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단순히 김 전 차관이 건설업자 윤중천 씨로부터 성상납 등 향응을 받은 수준에서 수사할 사안이 아니라 동영상 속 피해 여성들에 대한 특수강간과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또 검·경 고위급 인사가 당시 수사를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은 물론 2013년과 2014년 두 차례 수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내릴 당시 검사와 경찰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16일 검찰과 법조계에 따르면 이 사건을 다시 조사 중인 대검찰청 검찰과거사위 진상조사단은 김 전 차관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등장하는 이른바 '성접대 동영상' 속 여성을 '성상납 가담자'가 아닌 '성범죄 피해자'로 간주해 조사를 벌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차관이 단순한 향응 수수 의혹을 받는 게 아니라 동영상 속 피해 여성들을 성폭행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만약 실제 벌어진 일이 향응 의혹에 그치지 않는다면 이번 사건을 규명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공소시효 문제까지 해결될 수 있다.
문제의 동영상은 촬영 시기가 불분명한데, 이 때문에 공소시효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동영상 촬영 시기가 2009년쯤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단순 향응 수수는 공소시효가 7년에 불과해 이미 시효를 완성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없지 않았다.
반면 일각에서 제기된 마약 강제투약과 성폭행 의혹이 여러 증거로 뒷받침된다면 공소시효는 많이 늘어난다. 특수강간 혐의가 적용되면 기본적으로 공소시효는 15년이고, 여기에 디엔에이(DNA) 증거 등 과학적 증거까지 갖춘 사건이면 공소시효는 25년까지 될 수 있다.
또 성접대 동영상을 촬영한 행위도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혐의가 적용돼 5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할 수 있는데, 이런 행위의 공소시효는 최대 15년이다.
만약 다시 수사가 이뤄진다면 검찰과 경찰이 앞서 이 사건을 다룬 과정도 재수사 범위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2013년 성접대 동영상을 확보한 경찰이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는데도 검찰은 동영상 속 인물이 김 전 차관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
이듬해 동영상 속에 등장하는 여성이라고 주장하는 이 모씨가 김 전 차관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해 검찰이 재수사에 나섰지만, 2015년 1월 동영상 속 인물이 누군지 특정할 수 없다며 또다시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동영상 속 인물이 김 전 차관이라고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부족했다는 입장이지만, 경찰은 김 전 차관이라고 식별이 가능한 수준의 동영상이었다고 반박하고 있어 철저한 규명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2014년 재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씨가 '동영상 속 인물이 김 전 차관이 맞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는데도 김 전 차관을 단 한 차례도 소환조사하지 않고 무혐의 처분한 것을 두고 '봐주기' 의혹이 일었다.
경찰 수사 역시 부실했다는 지적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경찰은 김 전 차관 외 인물들도 성접대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동영상 등의 증거를 확보하고도 이를 검찰에 송치하지 않고 폐기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진상조사단이 최근 당시 경찰이 약 3만개에 달하는 디지털 증거를 누락한 사실을 확인하고 제출을 요청했지만, 경찰은 "당시 범죄와 관련된 증거는 모두 검찰에 제출했고 나머지는 폐기했다"며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진상조사단은 이처럼 여러 갈래로 제기되는 의혹을 종합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업자 윤씨를 둘러싼 권력형 비리로 간주하고 관련 의혹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검찰과 경찰 수사과정에서 인지하지 못했던 전·현직 군장성들과 윤씨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서도 들여다보는 중이다.
진실 규명에는 시간이 결정적 변수다. 진상조사단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활동을 종료하는 이달 31일 전에 조사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현재의 조사 속도로는 검찰과거사위가 활동을 종료하기 전까지 조사를 마무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게다가 14일 김 전 차관에 대한 소환조사가 그의 불출석으로 무산되면서 더욱 촉박한 상황이다. 진상조사단은 복잡하게 얽힌 의혹 규명을 위해서는 김 전 차관에 대한 직접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어서 활동종료일까지 소환을 계속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검찰 과거사위의 활동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는 양상인 만큼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철저한 규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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