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SNS에 지친 10대…우린 '라디오 감성'으로 다가가죠"

입력 2019-03-17 06:00  

"유튜브·SNS에 지친 10대…우린 '라디오 감성'으로 다가가죠"
50주년 맞은 MBC 표준FM 최장수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
신성훈 PD·DJ 산들 "라디오 떠난 청소년들 붙잡는 게 숙제"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가수 이문세가 '밤의 문교부 장관'이라고 불린 때가 있다. MBC 표준FM(95.9㎒) '별이 빛나는 밤에'(이하 '별밤')를 11년간 진행했을 때다.
1969년 3월 17일 첫 방송을 시작한 '별밤'은 청소년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다.
차인태, 이종환, 조영남, 김기덕, 이수만, 이문세, 이적 등 자신이 기억하는 '별밤지기'('별밤'의 DJ를 일컫는 말)가 누구냐에 따라 세대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별밤'이 대중문화 전반에 끼치는 영향력도 어마어마했다.
1989년에 시작한 '별밤'의 재능 경연 대회 '별밤 뽐내기'는 나얼, 김진호(SG워너비), 이수영, 이기찬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을 배출했다.
19대, 21대 '별밤지기'였던 박경림과 옥주현은 '별밤'으로 연예계 데뷔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2010년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라디오는 팟캐스트· 유튜브의 공세에 밀려나는 신세가 됐고, '별밤'도 주 청취층인 10대들이 라디오를 떠난 상황에서 어느덧 50주년을 맞았다.



최근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만난 26대 '별밤지기' 산들(본명 이정환·27)과 신성훈(40) PD는 "라디오에서 돌아섰던 청소년 친구들의 마음을 어떻게 돌리느냐가 DJ와 제작진들의 가장 큰 숙제"라고 말했다.
신 PD는 "라디오가 점점 나이 든 사람들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다. 청소년들이 떠난 매체를 청소년 타깃으로 해야 하나, 고민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런 그를 설득한 사람은 선배 PD인 남태정 PD였다.
"'노력도 해보지 않고 청소년들을 놓아주는 건 아닌 것 같다'라는 선배 말을 듣고 나선 다시 청소년들의 라디오가 되기로 했어요. 지금은 '교실 콘서트' 같은 청소년 맞춤 기획을 하고 있고요. 반응은 점점 오는 것 같아요. 들어오는 사연 중 10대 친구들이 보내는 게 절반을 넘어섰어요."
신 PD는 "청소년들이 유튜브, SNS 등 뉴미디어에 많이 지쳐있더라"라며 "라디오만이 주는 감성이 다시 청소년들에게 먹혀들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지금 10대들은 우리가 10대였던 시절보다 훨씬 수준이 높고 감성적이에요. 우리 나이 땐 매체가 많지 않아서 라디오에 맹목적으로 빠져들었지만 지금 청소년들은 매체를 선택할 수 있는 시대잖아요. 만약 청소년들이 라디오를 듣는다면 그건 진짜 우리가 '선택'을 받은 거니까, 더 잘 만들어야겠죠."



그렇다면 라디오만이 줄 수 있다는 '라디오 감성'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신 PD는 "감성, 감동은 감각을 통해 전달되지 않나"라며 입을 열었다.
"라디오는 유일하게 청각 하나만을 사용해 세계를 확장하는 매체예요. 감각 하나만 갖고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죠. 시각을 안 열어도, 냄새를 안 맡아도, 맛을 안 봐도 되고 조용히 하던 대로 귀를 열고만 있어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는 매체, 그게 라디오입니다."
산들 또한 "라디오는 라디오로 만들어지는 세계가 있다. 듣다 보면 그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매력이 있다"고 답했다.
산들은 '별밤'의 50주년을 맞는 별밤지기가 자신이라는 사실에 엄청난 부담감을 가진 적 있다고 털어놨다.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별밤이라는 무게감도 있지만 50년이라는 역사의 무게감도 너무 크더라고요. 큰 바위에 짓눌려진 기분은 처음이었어요. '나여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죠. 하지만 50년이라는 특별한 시간이 저 때문에 우중충해지는 건 싫더라고요. 부담스럽고 무겁지만, 그냥 즐기기로 했어요. 하하."



신 PD는 '별밤'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비결로 '편안함'을 꼽으며 "'별밤'은 어린 시절 뛰어놀던 동네 전봇대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별밤'은 50년간 많은 위로와 안녕을 전달해줬어요. 특정 집단에 딱 들어맞는 얘기가 아니라 개개인이 듣기 편안한, 삶과 밀접한 얘기를 담아낸 거죠. 그래서 이렇게 오래 유지할 수 있었다고 봐요. 한번은 이런 사연이 왔어요. 10년 만에 라디오 켰는데 아직도 '별밤' 하고 있었냐고요. 하하. 그런 사연은 아마 다른 프로그램에선 못 받을걸요."
라디오 프로그램들이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라이브 방송을 하는 요즘 추세에 관해 묻자 그는 "이슈의 중심에 서는 게 아니라 주변부에, 청취자 주변에 서는 게 우리 목표"라고 힘주어 말했다.
"라디오는 라디오예요. 라디오만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한 상태에서 타 미디어로 확장하는 건 위험한 시도라고 봐요. 저흰 이슈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냥 편하게 머무는 프로그램이 되는 게 목표예요. 지금 우리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nor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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