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 연기 만족…못 알아들을 것으로는 생각 못했다"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감독님이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나 싶었죠."
오는 20일 개봉하는 영화 '우상'에서 미스터리한 중국 교포 여인 련화를 연기한 배우 천우희를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내내 촬영 과정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시나리오 처음 받았을 때도 숨어있는 단서들이 많아서 천천히 읽었어요. 어렵다기보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요. 연기 해내야 하기가 쉽지는 않겠구나 싶었고, 의욕이 컸는데 두려움도 그만큼 컸죠."
영화 연출을 맡은 이수진 감독과는 '한공주'(2014) 이후 두 번째 만남이다.
"감독님이 '이거 다른 여배우 주면 아깝지 않겠냐'고 저를 꼬드기시더라고요. 련화가 배우로서 정말 탐이 나는 캐릭터이긴 했지만 쉽게 하겠다고 결정 내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한석규·설경구 선배님 캐스팅됐다는 이야기 듣고 제가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공주' 때보다 제가 더 좋은 배우가 됐다는
걸 감독님에게 보여드리고 싶기도 했고요."
실제 촬영은 생각보다 더 고됐다.
"납치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걸 5일 동안 매일 12시간씩 찍었어요. 촬영 내내 눈에 청테이프를 붙이고 있었고 화장실 가는 것도 다 참았죠. 눈이 나중에는 짓무르더라고요. 기온은 영하 15도까지 내려가고 몸은 비에 젖어있고요. 마지막 촬영 때는 공황장애가 올 정도였어요. 그러다 사고도 나서, 그때는 '내가 이러다 비명횡사 하는 거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렇지만 배우로서 누를 끼치기 싫고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압박이 됐죠."
눈에 붙인 청테이프 때문에 눈썹이 없어지기도 했다. 천우희는 "눈썹이 없다 보니 칩거했다"며 "혼자 집에 있을 때 많이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힘들었기 때문에 생존이 목적인 련화와 더 공감할 수 있었다고 천우희는 설명했다. 선배 배우인 김주혁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일도 천우희에게 영향을 미쳤다.
"련화도 바라는 것이 크지 않잖아요. 단순하게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데…. 저도 혼자 집에 있을 때는 '나만 왜 이렇게 힘들지?' 싶더라고요. 이런 감상적인 태도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모든 게 억울했어요. 이 작품이 힘들었던 것도 있지만 김주혁 선배님 일도 저에게는 컸어요. 큰 의욕으로 일하다가 이런 일을 겪으니까 배우로서 열정을 불태워가면서 연기하는 것이 부질없이 느껴지더라고요. 연기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아무런 여력이 없었어요."
그는 "지금은 많이 극복했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며 "그런데도 련화가 나오는 장면을 볼 때마다 울컥한다"고 덧붙였다.
'우상'은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관객에게 해석하게 만드는 영화다. 련화의 연변 사투리 역시 알아듣기 어렵다.
천우희는 이에 대해 "알아듣기 힘들다고 하시는 것은 사실 생각하지 못했던 반응이다"고 털어놨다.
"중국 교포 관련 영화에서 사투리를 지도해줬던 선생님께 배웠는데, 엄청 칭찬받았거든요. 처음부터 단어 하나하나를 선택해가면서 만들었고요. 정말 '리얼한' 단어를 쓸 것인가 아니면 영화적으로 표현되는 단어를 쓸 것인가 고민했는데 실제처럼 가는 게 맞겠더라고요. 그런데 못 알아듣는다는 반응이 나오니까 '너무 리얼한 걸 추구했나?' 싶었죠. 하지만 저는 만족해요."
천우희는 올해 영화 '버티고'와 드라마 '멜로가 체질'을 선보일 예정이다.
"'버티고'는 제가 지금까지 연기한 것 중 가장 감상적이고 자기 위안적인 작품이에요. 다시 '연기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해준 고마운 작품이죠. 저 정통멜로도 많이 하고 싶고 아직 안 해본 연기가 많다 보니까 도전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아요."
그는 "영화 찍고 개봉할 때까지 그 인물을 떠나보내지 않고 갖고 있다"며 "'우상'이 이제 사람들 앞에 나가니까 내 손을 떠난다는 것에 대해서 울적함이 생기면서 한편으로는 빨리 개봉해서 자유로워지고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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