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왕자씨 피격은 통과의례" 발언 논란에 "남북갈등 총칭의 표현"
2002년 NLL 발언도 논란…최근 기고문선 "해상에서의 기존 관할구역"
(서울=연합뉴스) 이봉석 기자 = 오는 26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둔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과거 발언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일부 언론이 연일 김 후보자의 과거 SNS 게시글과 언론 인터뷰 등을 집중 조명하고 있는 가운데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명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특히 금강산관광 중단의 발단이 된 박왕자 씨 피격 사건을 두고 김 후보자가 2010년 '통과의례'라고 표현한 점이 알려지자 직접 해명하는 입장을 통일부를 통해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공직 후보자도 아닌 약 10년 전 연구자 신분의 발언을 가지고 통일부 장관의 자질을 저울질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전문가들은 "보통사람과 마찬가지로 학자들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나 입장이 변화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수년 전 쓴 글의 한 대목만 떼어내 비판을 하는 것은 지나치고 현재의 시점에서 그의 생각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후보자가 지난해 1월 펴낸 저서인 '70년의 대화'를 중심으로 그의 과거 발언에 대한 입장 변화와 발언의 배경을 살펴봤다.
◇ "박왕자씨 피격은 통과의례" 발언 논란
최근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박왕자 씨 피격 사건에 대한 언급이다.
김 후보자는 인제대 교수로 있던 2010년 '한겨레21'에 기고한 '금강산관광이 5년 먼저 시작됐다면'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접촉 초기에는 충돌이 불가피하다"며 "일찍 시작했어도 우리가 겪어야 할 통과의례였다"고 말했다.
이어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라면, 차라리 일찍 겪는 게 낫다"고 덧붙였다.
김 후보자의 9년 전 이런 발언이 검증 국면에서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16일 논평을 통해 "공직 후보자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의 자격도 미달"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김 후보자가 박 씨의 사망 자체를 '통과의례'의 사례로 든 것은 아니었다.
그는 금강산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는 사람, 탈북자 얘기를 꺼냈다가 억류된 사람, 교통사고에 따른 북한 군인의 사망 등 사건·사건들을 통틀어 남북 간 접촉 초기의 불가피한 충돌로 본 것이다.
그는 17일 통일부를 통해서도 "통과의례라는 표현은 금강산관광 초기 신뢰 부족으로 겪었던 정치적 문화적 갈등을 총칭하는 것이지, 고(故) 박왕자님의 비극을 직접 지칭한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어 "대한민국 국민의 비극적 죽음에 대해서는 애도를 표시했고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70년의 대화'에서는 "(박씨가) 안타깝게 가로등이 켜진 산책로가 아니라 철조망이 쳐진 어두운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며 "처음 있는 일이기에 국내적 충격은 더욱 컸다"고 서술했다.
◇ 2002년 토론회서 "남한 NLL 고수 철회돼야"
김 후보자는 또 제2연평해전이 벌어진 직후인 2002년 7월 한 토론회에서 "남한의 NLL(북방한계선) 고수가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던 그는 당시 남북간 군사적 충돌의 배경에 대해 "(남한의) 일방성과 어장 확보를 둘러싼 남북한의 생존 경쟁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는 작년 9월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북방한계선은 해상에서의 기존 관할구역'이라는 정부의 기본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라고 NLL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했다.
'70년의 대화'에도 이런 입장의 연상선에서 서해상에서 군사적 충돌과 NLL 문제를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우선 남북 군사적 충돌의 원인과 관련해서는 '70년의 대화'에서 북한 책임론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책에 "북한은 1955년 12해리 기준으로 자신들의 영해를 선포하고, 이후 간헐적으로 NLL을 침범했으며 NLL을 둘러싼 남북갈등이 지속되었다"고 썼다.
그러면서 "1999년 남북 간 무력충돌 사태인 연평해전, 2002년 서해교전(제2연평해전)이라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했다"고 덧붙였다.
책은 아울러 2013년 박근혜 정부의 국가정보원이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면서 그 내용이 NLL 포기를 말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맥락은 정반대였다고 적시했다.
◇ 5·24조치 효과, 천안함 사건도 논란
김 후보자가 "(천안함 사건의 후속 조치인) 5·24 제재는 지나친 대응이었다"고 밝힌 대목도 거두절미된 채 논란이 되고 있다.
그는 '70년의 대화'에서도 2010년 이명박 정부의 5·24조치에 대해 "대북제재 효과는 제한적이지만 우리 기업은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런 주장의 근거로 현대경제연구원 발표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연구원은 2011년 연구조사를 통해 북한이 입은 피해(8억 달러)는 남측 기업의 직접 피해액 45억 달러의 19.3%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당시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남북 경제협력 실태조사단은 5·24조치로 국내적으로 45억 달러의 피해를 입었다는 추산액을 밝혔고, 김 후보자의 책에는 이런 자료도 포함됐다.
그는 남북 경제협력 중단으로 북한의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높아진 점을 지적하면서 "심화될 수밖에 없는 북·중 경제협력은 대북제재의 구멍을 의미한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그는 또 2011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남북 관계가 파탄 난 것은 금강산 관광객 피격이나 천안함, 연평도 사건 때문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의 10·4 선언 불이행으로 남북 간의 신뢰가 약화되면서 우발적인 사건이 잇따라 터져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천안함 사건을 북측의 도발이 아닌 '우발적 사건'이었다는 취지로 말한 점이 문제가 됐다.
그러나 그는 저서에서 "2010년 서해에서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다"고 명시했다.
anfou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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