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스타 조각가, 홍대 아라리오 '베셀'展 "한 치 앞도 못 보는 시대에 저항"
작년 루브르 설치된 황금조각 축소품도 "새 시대의 권력은 인공지능"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한 발 내딛기도 두려울 정도로 컴컴한 전시장. 저 멀리 반짝이는 덩어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서로 몸을 단단히 포개거나, 머리를 감싸 쥔 채 숙이고 있다. '폼페이 최후의 날' 인간 화석이 떠오를 정도로, 흐느적대는 몸의 움직임을 순간적으로 잡아낸 조각들이다.
"댄스와 조각의 융화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성별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거의 덩어리라는 느낌으로 시각화하려 애썼습니다."
괴이하면서도 아름다운 인체 조각 '베셀'은 일본인 미술가 나와 고헤이(名和晃平·44)가 2017년 프랑스 안무가 데미앙 잘레와 함께 연출한 동명의 퍼포먼스에서 출발했다. 각국을 순회 중인 공연 '베셀'은 사후 세계를 구현한 작품이다.
19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아라리오갤러리 서울Ⅰ라이즈 호텔에서 만난 작가는 "영혼이 없는 신체라는 점을 표현하기 위해 머리를 일부러 감췄다"라면서 "공연도 신체가 영혼을 찾아 끊임없이 헤매는 모습을 표현했다"라고 설명했다.
'베셀'은 나와가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연 7년 만의 한국 개인전 대표작이다.
관람객들은 길이 30m 무대에 길게 늘어선 채 반짝이는 인체 조각들을 보자마자, 시각적으로 먼저 압도당한다. 표면에 탄화규소를 바른 조각은 조명 각도에 따라 반짝임을 달리한다. '감각의 울림'을 강조해온 작가의 철학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작가는 '베셀'에서 여러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이 옳고 바르고 정확한지 말하기 어려운 시대이지 않습니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시대에 머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저항적으로 대항하는 듯한 움직임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나와는 사슴 등의 박제 동물에 투명 크리스털과 유리, 우레탄 등을 두른 이른바 '픽셀' 작업으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스타 조각가다. 2011년 도쿄도현대미술관 대규모 개인전으로 주목받았고 세계 유수 기관에 작품이 소장됐다.
그는 지난해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유리 피라미드에 설치된 황금 조각 '스론'(Throne)으로 다시 한번 명성을 얻었다. 이번 서울 전시에도 '스론'을 축소한 조각 한 점이 나왔다.
작가는 루브르 미술관, 피라미드라는 설치 장소에서 '권력'이라는 주제를 추출했다. 고미술 불상처럼 언뜻 보이는 황금 조각은 권력의 표상이다.
작가는 "아직도 왕이 있는 곳도 있고 권력이란 것은 계속 존재한다"라면서 "다만 새 시대가 오고 있고 그 왕좌는 인공지능이 차지할 것으로 본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20년간 조각과 건축, 디자인, 공연 등 다양한 장르를 누벼온 나와에게 예술의 화두를 물었더니 '세포'라는 답이 돌아왔다. "제 작업의 원점에는 세포가 있습니다. 세포라는 것이 끊임없이 살아와서 지금 우리가 만드는 세상을 만들었잖아요. 세포가 몇억년에 걸쳐 진화했기에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 궁금합니다."
회화와 조각, 설치 등 30여점을 아우른 전시는 7월 21일까지.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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