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전범재판소 "1심 40년형, 범죄 심각성에 비해 너무 가벼워"
변호인 "서방압력 따른 정치적 판결"…학살 희생자 유족은 박수·눈물
(로마=연합뉴스) 1992∼1995년 이어진 보스니아 내전 당시 대량학살 등 '인종 청소'를 자행한 혐의를 받는 세르비아계 정치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73)가 유엔 산하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항소심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ICTY는 20일(현지시간) 카라지치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그가 1995년 보스니아 동부 스레브레니차에서 대량 학살을 저지른 혐의 등이 인정된다며 이 같이 판결했다.
재판부는 범죄의 심각성과 피고의 책임에 비췄을 때 1심에서 받은 징역 40년 형은 너무 가볍다고 지적하면서, 형량을 무기징역으로 늘렸다.
내전 당시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최고 지도자였던 카라지치는 유고 연방이 유지되길 원하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의 지원으로 내전을 일으켜 이슬람계, 크로아티아계 주민 등 수십만 명의 학살을 주도한 장본인으로 여겨진다.
그는 내전 이후 13년간의 도피 끝에 지난 2008년 체포된 뒤 대량학살, 전쟁범죄, 인권침해 범죄 등 11개 혐의로 기소돼 2014년 9월 검찰측으로부터 종신형을 구형받았다.
그는 2016년 3월 열린 ICTY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40년형을 선고받자 항소했다.
카라지치는 보스니아 내전 막바지인 1995년 스레브레니차에 거주하는 이슬람교도 8천명의 학살을 지시하고,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에 40개월 이상 포격을 가해 민간인 약 1만 명을 숨지게 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짙은 색 정장과 붉은 색 타이 차림으로 유엔 경호원에 이끌려 법정에 나온 그는 이날 주심 판사로부터 남은 평생 내내 감방에서 보냄을 의미하는 종신형을 선고받을 때 거의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고 AP통신 등은 전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24년 전 비극의 현장인 스레브레니차의 한 추모센터에 모여 TV를 통해 중계되는 선고 장면을 지켜보던 당시 학살 피해자의 친지들은 카라지치에게 종신형 판결이 내려지자 손뼉을 치면서 눈물을 흘렸다.
한편, 카라지치의 변호인은 보스니아의 N1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판결은 법에 기반하지 않은 순전히 정치적인 판결로 보스니아 화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카라지치는 보스니아 내전 당시 자행된 전쟁 범죄에 '도덕적인 책임감'은 느끼고 있으나, 형사적인 책임은 없으며 "이번 판결이 법관들이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체제인 '스르프스카 공화국'에 불리한 판결을 내리라는 서방의 압력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르프스카 공화국의 라도반 비스코비치 총리 역시 현지 방송에 출연해 이번 판결을 정치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아무도 내전 당시 세르비아계를 겨냥해 저질러진 범죄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주민 대다수는 헤이그에 있는 유고전범재판소가 서방의 편에 서서 세르비아계에 불리한 판결을 내리고 있다며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로이터 제공]
1992년부터 3년간 이어진 보스니아 내전은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가 유고 연방으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선언하자 보스니아 인구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던 세르비아계가 반발하며 벌어졌다.
보스니아는 약 10만 명이 사망하고, 수백 만명의 주민이 터전을 잃은 끝에 서방의 개입으로 1995년 데이턴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전쟁을 종결지었다.
정식 국명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인 이 나라는 현재 민족 구성에 따라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로 구성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FBiH), 세르비아계 위주인 스르프스카 공화국(RS) 등 2개의 하위 체제로 나뉘어 있다.
민족 분포를 보면, 이슬람 신자가 주류인 보스니아계 주민이 전체 주민의 약 50%로 절반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계 약 31%, 가톨릭 신자가 대다수인 크로아티아계 약 15%, 유대인과 집시 등 기타 민족이 약 4%로 뒤를 잇고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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