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해선 안 죽는다는 '물곰'에게서 극한생존 열쇠 찾는다

입력 2019-03-21 15:05  

웬만해선 안 죽는다는 '물곰'에게서 극한생존 열쇠 찾는다
생물학적 특징 활용하려는 연구 활발…미군도 연구비 지원 가세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지구에 어떤 일이 닥쳐도 최후까지 살아남을 것이라는 완보(緩步)동물문 '물곰(water bear)'이 인류에게 극한 생존의 열쇠를 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완보동물문은 남극의 혹독한 추위나 300도에 달하는 열, 우주 방사능, 산소나 물이 전혀 없는 공간 등 생명체가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환경에서도 거뜬히 생존하는 강한 생명력을 보인다.
21일 AP통신에 따르면 통통한 곰에다 외눈박이 외계인을 합성해 놓은 듯한 볼품없는 이 생명체는 웬만해선 죽지 않는 특징 때문에 이를 이용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가뭄에 내성을 가진 작물로 품종을 개량하거나 효과가 높은 자외선 차단제를 개발하는 등의 연구가 이미 이뤄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미군까지 연구비 지원에 나선 상황이다.
물곰은 현재까지 알려진 것만 약 1천200종에 달하며, 산꼭대기에서 깊은 바다, 남극의 얼음 속까지 지구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주변 상황이 생존에 어려워지면 몸을 말고 수분이 없는 상태로 전환해 수십년간 휴면상태를 유지하며 생존 환경이 호전되길 기다리는 것으로 연구돼 있다.
순환기나 뼈가 없어 몸을 말아 초생존 모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7년 우주 궤도에서 이뤄진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두 종을 용기에 담아 공기가 없는 우주 공간에서 추위와 우주 방사능에 노출했지만 생존을 넘어 번식까지 했으며 그 새끼들이 아직 생존해 있다. 다른 생명체라면 단 몇십초를 못 버텼을 극한 상황이었다.
물곰은 특히 지금까지 지구에서 벌어진 5차례의 대멸종을 모두 견뎌냈으며 앞으로 또 다른 대멸종이 와도 견뎌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버드대학 천문학자 아비 러브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우주 참사가 빚어졌을 때 지구에 생명체가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실험한 결과, 물곰은 대형 소행성 충돌이나 우주선(線) 폭발, 인근에서의 초신성 폭발 등과 같은 대부분의 참사를 이겨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물곰만은 생존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물곰이 태양계 밖 외계행성에서도 쉽게 생존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다른 행성에서 지구로 왔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런 끈질긴 생존력을 활용하는 연구는 아직 초보단계이지만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생물학자인 토머스 부스비 박사는 물곰이 휴면기로 들어갈 때 발현되는 유전자를 찾아내 효모에 주입하는 실험을 통해 가뭄에 대한 내성이 100배나 더 강해지는 결과를 얻었다.
부스비 박사는 이 유전자를 이용해 작물이 가뭄에 더 잘 견딜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미국 국방부의 장기 연구지원 부서로부터 500만 달러에 가까운 연구비 지원을 받아 인간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물곰 유전자 연구를 추진 중이다.
부스비 박사는 물곰이 건조할 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 백신이나 혈액을 보존하는 데 쓰일 수 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를 통해 현재 6주에 불과한 혈액 보존기간이 늘어나고 건조된 상태로도 보관할 수 있게 된다면 전장에서 부상자들이 자기 피를 수혈받을 수 있고 앰뷸런스도 더 많은 혈액을 갖고다닐 수 있게 된다.
또 백신 보존 기간이 늘어나고 보관 방법을 간편화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인체 장기나 손상된 조직 보관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과학자들은 물곰의 단백질이 피부암을 유발하는 자외선 차단제를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를 연구 중이다. 지난 2016년 초기 연구에서는 물곰에게만 있는 DNA 단백질로 강화된 인체 세포는 복사 피해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eomn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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