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미국인 작가 크리스털 하나 김 '네가 만일 나를 떠난다면'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글쓰기는 내 정체성을 이해하고 탐방할 수 있는 수단이었습니다."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된 소설 '네가 만일 나를 떠난다면'(If you leave me)은 영어로 돼 있지만,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마치 한국 소설을 읽는 듯 친숙한 장면들이 펼쳐진다.
부산 난민촌이 눈앞에 그려지는가 하면 'nuna'(누나), 'hyung'(형), 'makgeolli'(막걸리) 등 우리나라 고유 단어들이 알파벳으로 적힌 것을 보는 신선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이번 책을 집필한 한국계 미국인 작가 크리스털 하나 김(Crystal Hana Kim)은 27일 연합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번 소설이 "한 가족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 한국 전쟁의 영향을 받은 모든 한국인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네가 만일 나를 떠난다면'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직후인 1951년부터 1967년까지를 배경으로 이해미와 윤경환, 윤지수 세 남녀의 사랑과 갈등, 운명을 다룬 소설이다.
전쟁의 참혹함과 비정함에 대한 내용도 담겼지만, 이를 주요 주제로 삼기보다 전쟁 시대를 사는 평범한 청년들이 어떤 삶을 살고 어떻게 관계를 맺었는지 묘사하는 데 집중했다.
김 작가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컸지만, 한국에 친척을 만나러 매년 가는 등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며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직접 경험한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에 관한 소설을 쓴다면 내 문화적 역사를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고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을 밝혔다.
미국에 사는 작가가 한국 과거를 다룬 소설을 쓰기는 쉽지 않았다.
김 작가는 친척들을 돌아가면서 인터뷰해 소설 틀을 잡았고, 한국전쟁 당시 군인들 회고록을 읽고 관련 사진이나 영화를 찾아보는 등 수많은 자료를 연구하며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고증을 거듭했다.
그는 "한국전쟁은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며 "등장인물들에게 특정 모델은 없지만, 다양한 계층과 세대의 등장인물들을 설정하면서 당시 한국인들의 심정과 트라우마, 계급 격차, 애국심, 모성애 등에 대한 내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가 특히 집중한 인물은 현기의 누나이자 사촌지간인 윤경환과 윤지수의 사랑을 동시에 받고, 후에 소리의 엄마가 되는 해미다.
그는 "인간 경험의 보편성을 이야기하고 싶어 등장인물 간 관계를 세밀하게 묘사했고, 전후 사회와 그 안의 인물들이 전쟁의 트라우마 속에서 서구의 영향을 받으며 어떻게 변하는지 그리고자 16년의 세월을 설정했다"며 "특히 당시 여성들이 결혼하고 엄마가 되며 굴레에 얽매이는 상황을 담기 위해 해미에게 천착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한국전쟁은 베트남 전쟁, 세계 2차대전과 다르게 '잊힌 전쟁'으로 불린다"며 "이 시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어 이러한 상황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이번 책은 작가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경험이 투영된 일기장과도 같다.
미국은 다문화 사회지만, 정통 미국인들의 문화가 아닌 다른 문화를 담은 책들은 외국 단어가 나오면 백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이탤릭체로 적고 뒤에 해석을 붙이곤 한다.
하지만 김 작가는 nuna(누나), hyung(형) 등 한국 단어들의 영문 발음을 다른 단어들과 구분하지 않고 똑같이 썼다.
"이번 소설은 1인칭으로 돼 있는데 현기가 말하거나 생각할 때 '누나' 뒤에 그 해석을 떠올렸을 리 없어요. 만약 해석을 붙였다면 등장인물들의 경험을 왜곡하고 이야기의 본질을 흐리는 게 됐겠죠. 저는 이 소설이 당시 한국인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도록 많은 연구를 했고, 내 소설을 진정으로 좋아해 주는 독자들이라면 낯선 단어가 나오더라도 이를 찾아보면서 계속 읽어나갈 것으로 믿었습니다."
한국적인 정서가 전반에 흐르지만, 이번 책은 미국 독자들에게도 널리 사랑받았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포스트에 '2018 올해의 책' 중 한권으로 꼽혔고 뉴욕타임스, 잡지 엘르와 코스모폴리탄 등에서 긍정적인 리뷰를 싣기도 했다.
작가의 다음 책에도 한국이 등장한다. 1980년대 뉴욕과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계 미국인의 정체성, 이민, 가족의 의미와 인권 등을 다룬다.
김 작가는 "우리 부모님과 할머니, 할아버지, 친척들은 이번 소설이 영어로 돼 있어 읽지 못했다"며 "그들을 위해 하루빨리 한글 번역본이 나왔으면 한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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