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도 실명 밝힌 학생 중심으로 피해 사실 재조사
시민단체 "폐쇄적인 학교 특성상 피해자 익명성 보장해야"
교육청 "가해자 처벌하려면 실명 밝혀야…전수조사 방식 재검토"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교사가 성희롱 발언과 성추행을 했다고 폭로한 부산지역 2개 여자고등학교 피해자 60여 명이 벌써 2차 피해를 봤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부산진경찰서는 "교육 당국이 수사 의뢰를 한 S여고 성범죄 사건과 관련해 학생 40여 명을 상대로 피해자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25일 밝혔다.
경찰은 "실명으로 피해를 밝힌 학생들을 중심으로 피해자 조사를 받고 있다"며 "누가 경찰 조사를 받는지 아무도 모르게 하고자 학생들이 원하는 장소에서 가명으로 피해진술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 당국이 전수조사하는 과정에서 피해 학생들이 실명을 사용하도록 만들어 2차 피해가 발생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부산성폭력상담소는 "여러 명이 듣는 수업 중에 발생하는 '스쿨 미투' 특성상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데 학교와 교육 당국이 실명을 요구하는 것은 명백히 2차 피해"라며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폐쇄적인 공간인 학교에서 교사를 고발하는 '스쿨 미투'에 있어 어떻게 해서든지 익명성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18일 부산시교육청이 S여고 전체 학생 687명 중 680명이 참여한 설문조사에서 학생 100명이 교사 13명(현직 8명, 전출·퇴직 5명)으로부터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피해 학생 100명 중 43명이 자신의 이름을 밝혔고 나머지는 이름을 적지 않았다.
동래경찰서도 시교육청이 수사 의뢰한 동래구 S여고 '스쿨 미투' 사건과 관련해 피해 학생을 상대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 학교도 전수조사 과정에서 피해 학생 20여 명이 실명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해 교사로 지목된 4명 중 3명은 연가 등으로 수업에서 배제됐으나 교사 1명은 다른 학년 담당이라는 이유로 계속 출근하고 있어 또 다른 피해가 우려된다.
부산성폭력상담소는 "교육청에서 스쿨 미투 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전수조사로 피해를 조사하고 있지만, 학생 눈높이에서는 이러한 조치가 부족하기만 하다"며 "스쿨 미투를 고발한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피해자 입장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부산시교육청 관계자는 "경찰 등이 참여하는 성범죄 정책자문단과 논의에서 가해자를 처벌하려면 익명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에 따라 전수조사에서 실명과 익명을 모두 사용하도록 했다"며 "2차 피해 우려가 된다는 지적이 있어 설문조사 방식을 재검토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가해자로 지목되고도 계속 출근하는 동래구 S여고 교사 1명은 이 교사와 관련된 피해 학생이 1명이고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밝히는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조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c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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