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의 제주4·3 희생자.유족, 특별법개정안 국회통과 기다린다

입력 2019-03-31 08:00  

수만의 제주4·3 희생자.유족, 특별법개정안 국회통과 기다린다
1년 넘게 계류중…'민주화운동 보상'기준 연차적 배·보상 방안 담아
'군사재판 무효' 조항으로 수형인 2천500명 일괄적 명예회복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왕벚꽃이 만발하게 필 무렵 제주에서는 원통한 희생을 위로하는 추모제로 슬픔에 잠긴다.

수만의 인파가 4월 3일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아 헌화·분향하고 위령제단 앞에서 국가 폭력에 의한 희생자들이 평안히 잠들기를 기원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후 발생한 제주4·3은 이념의 굴레를 벗지 못해 수십년간 역사의 어둠에 묻혀왔다.
제주4·3은 발발 50여년이 지나서야 진실로 향하는 문에 다가서게 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1월 제주4·3특별법(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국가 차원에서 제주4·3의 아픔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주4·3특별법 제정 20년이 지난 현재 진실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새로운 계기가 필요하다.
현행 제주4·3특별법은 피해자들을 위한 개별적이고 실질적인 구제방안이 빠져 있다.
위령 사업이나 의료지원금 및 생활지원금에 대한 규정만 있을 뿐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피해배상 방안은 전무한 실정이다.
또 제주4·3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항쟁 또는 운동, 사건 또는 사태인지에 대한 실체규명 이른바 정명(正名)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도 부족하다.
제주4·3 희생자들에게 실질적인 배·보상을 통해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고 진상규명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입법과 사법적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 입법을 통한 배상
제주4·3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제주4·3은 많게는 3만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희생자 숫자만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고 사망자 유족들과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피해자들이 현재까지도 고통을 받고 있다.
제주4·3 희생자와 유족들에 대한 입법적 구제를 위해 제주4·3특별법 전부 개정 법률안이 2017년 12월 국회에서 발의했다.
그 이후 현재까지 1년 넘게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제주4·3희생자추념식을 앞두고 내달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이 상정된다.
법안소위에서 의결될 경우 연내 국회 본회의 통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1일 법안소위에서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이 의결되지 않으면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국회일정 등으로 20대 국회에서 처리가 무산될 수 있다.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국회 오영훈 의원은 제주 4·3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희생자(현재 인정자 1만4천363명)에게 지급할 배상 비용이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이에 따라 희생자 및 유족의 보상을 위한 재원 조달이 가능하도록 보상액 연차 지급 등의 구체적인 지급 방안 마련을 행정안전부에 주문했다.
정부는 배·보상 지급 규모를 '민주화 운동 보상법'에 따른 기준으로 검토하고 있으나 현재 배·보상에 대한 지급 규모가 부처마다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피해자 보상은 보상 1차연도인 1990년에 총 2천219명에게 1천421억7천100만원이 지급됐다.
이어 1993년과 1998년, 2000년, 2004년, 20006년, 2015년까지 총 7차례에 걸쳐 순차적으로 5천807명에게 2천510억9천70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1인당 평균 지급액은 4천324만원이다.
또 부마 민주항쟁 관련자 등 명예회복 및 보상 법률에 의한 보상으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총 6차례에 걸쳐 연차적으로 196명에게 평균 4천684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22일 국회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제주4·3특별법 전부 개정안 법률에 근거해야만 지급 규모를 명확히 정할 수 있다면서 제주4·3특별법 개정안 통과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지급 대상을 정하는 방안 마련도 중요하다.
정부 수립 전후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제주4·3이 발생했기 때문에 직계 유족의 기준이 되는 가족관계등록부가 제대로 작성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4·3 당시 부모가 사망하자 그 이후 아버지의 형이나 동생 등 다른 형제의 호적에 친생자로 올린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경우 법적으로 직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국가 폭력에 의해 부모가 목숨을 잃었더라도 그에 대한 배상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에 따라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은 제23조(가족관계등록부의 작성)로 '사실과 다르게 기록된 희생자 및 유족은 다른 법령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4·3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가족관계등록부를 작성하거나 기록을 정정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개정안은 또 '군사재판의 무효' 조항을 신설, 1948년 12월 29일 작성된 제주도계엄지구 고등군법회의 명령 제20호와 1949년 7월 3∼9일 작성된 고등군법회의 명령 제1-18호 및 각각의 명령서에 첨부된 별지 상에 기재된 사람에 대한 각 군사재판이 무효라고 명시했다.
당시 불법적 군사재판이 무효인 점을 명확히 하면서, 법무부 장관은 재판의 무효를 관보에 게재하고, 제주4·3수형인 희생자와 유족에게 즉시 통보하도록 했다.

4·3 피해자 중 4·3수형인은 제주4·3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서대문형무소 등 전국 형무소로 끌려가 수감된 이들을 말한다.
1999년 추미애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의원이 명부를 발견하면서 그 인원이 2천500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수형인은 행방불명 되거나 고문 후유증으로 숨을 거두기도 했다. 살아남은 생존자로 신고된 인원은 30명에 불과하다.
생존자들도 육체적 정신적 후유장해를 겪다가 상당수가 생을 마감했다. 또 '연좌제'로 인해 자녀가 공직 취업에 제한을 받는 피해를 봤다.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처리된다면 수형인 명부의 2천500명이 입법적 구제를 통해 일괄적으로 명예회복을 하게 된다.

◇ 사법적 구제의 한계
지난달 22일 제주4·3 당시 불법적인 군사재판으로 모진 수형생활을 한 4·3 생존 희생자 등 18명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수형인 1인당 배상 청구액은 최소 8천만원에서 최대 14억7천427만원까지다. 18명 모두 총 53억5천748만원을 청구했다.
이들 수형인 18명은 1948∼1949년 내란죄 등 누명을 쓰고 징역 1년에서 최대 20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이들은 지난 1월 17일 열린 재심사건의 선고에서 공소기각 판결을 받았다.
공소기각이란 형사소송에서 법원이 소송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을 경우, 실체적 심리를 하지 않고 소송을 종결시키는 것을 말한다.
4·3 당시 이뤄진 군사재판이 별다른 근거 없이 불법적으로 이뤄져 재판 자체가 '무효'임을 뜻한다.
이번 판결로 재심을 청구한 생존 수형인들이 사실상 무죄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4·3 당시 수형인 등 희생자들이 소송을 통해 보상 등 사법적 구제를 받기란 쉽지 않다.
이번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수형인 18명 중 1명이 손해배상 판결을 받게 되더라도 다른 희생자들에 대한 대표성을 띠고 있지 않다.

이번 수형인 18명도 각자가 별도의 손해배상 청구 사건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4·3 생존 희생자 본인이나 사망한 희생자 유족이 제각기 손해배상을 청구해 손해배상을 받아야 하나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또 국가권력에 의한 불법행위에 있어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경우 대부분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문제가 돼 왔다.
즉 손해배상 청구자의 청구권은 소멸시효의 시기 내에 유효하기 때문에 소멸시효 시점을 설정하는 데 법적, 현실적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문성윤 변호사는 "4·3 당시 국가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본 희생자나 유족이 개별적인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경우 피고(국가) 측에서 소멸시효 항변을 주장할 것이 분명한데, 그 경우 소멸시효가 만료됐는지를 명확히 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변호사는 이어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사법적 구제방안은 법률적 구제의 어려움과 나아가 패소할 경우 국가로부터 법적 배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또 4·3이 국가공권력에 의해 유례없는 집단적인 피해가 발생한 사건인데, 소송이 어려운 희생자나 유족은 사법적 구제를 받을 수 없게 돼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오영훈 의원실 관계자는 "4·3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배상과 보상은 개별적인 사법적 소송보다는 입법적으로 일괄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4·3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소송 없이도 모든 희생자가 일괄적으로 배상과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kos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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