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증언 본풀이마당 '나는 4·3희생자입니다'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물고문에 전기고문도 당했는데, 4·3 후유장애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29일 오후 제주도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제주4·3 증언 본풀이마당 '그늘 속의 4·3 그 후 10년, 나는 4·3희생자입니다'에서 정순희(84·서귀포) 할머니는 4·3 당시 10대 소녀의 몸으로 모진 고문을 겪었음에도 후유장애 인정을 받지 못한 사연을 토로했다.
1935년 서귀포시 강정동에서 태어난 정 할머니는 4·3의 광풍 속에 둘째 오빠(당시 20세)가 행방불명됐다는 이유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겪어야 했다.
두꺼운 끈으로 팔과 다리를 결박하고, 문짝에 묶고, 거꾸로 세워서 고춧가루 푼 물을 코와 입으로 붓는 물고문을 당했다.
쇠꼬챙이를 치아 사이에 집어넣어 강제로 입을 벌리게 하는 고문 때문에 오랫동안 치아 두개가 없는 채로 살았다.
또한 쇠꼬챙이로 등과 허벅지 등을 찌를 때마다 몸이 '찌르륵' 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게 전기고문이었던 것 같다고 정 할머니는 전했다.
세 살 위 언니 역시 경찰에 끌려가 비슷한 고문을 겪었다.
정 할머니는 4·3 희생자 유족이기도 하다. 정 할머니의 어머니는 서북청년들에 의해 동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총살당했다.
그 후로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몸과 마음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다.
평생 고문 후유증을 심하게 앓아왔지만, 국가는 이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괴로운 기억들 때문에 잠을 이루기도 어렵다고 정 할머니는 토로했다.
정 할머니는 "4·3후유장애 신청을 했지만 고문받은 흔적이 별로 없다고 해서 인정받지 못했다"며 "지난해에 다시 신고를 받을 때 진단서를 끊어오라고 했다. 70년이 지난 것을 이제 와서 어떻게 진단서를 끊나. 의사도 눈으로 보이는 상처가 없기 때문에 안된다고 해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증언 본풀이마당에는 또한 김낭규(79) 할머니가 4·3 당시 산에 있다가 총살당한 아버지를 4·3희생자로 신고했으나 희생자 철회 요구를 받았고, 희생자 위패마저 사라져버린 사연을 소개하며 눈물 흘렸다.
외조부모 등이 총살당한 아픔이 있으며, 4·3 당시 허리를 심하게 다쳤으나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장애가 남아 후유장애 신청을 했으나 인정받지 못한 강양자 할머니(77)도 증언자로 나섰다.
이 행사를 주최한 4·3연구소는 "증언 본풀이마당은 4·3 체험자들이 마음속에 쌓여온 기억을 풀어냄으로써 자기 자신을 치유하는 자리이자 4·3의 진실을 후세대에 알리는 과정이기도 하다"며 체험자들의 여건이 허락하는 한 이 행사를 계속 열겠다고 밝혔다.
ato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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