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숀 그리어 장편소설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미국 작가 앤드루 숀 그리어의 지난해 퓰리처상 수상작 '레스'(은행나무)가 번역·출간됐다.
이번 소설은 50세 생일을 앞두고 삶도 사랑도 모두 깊은 수렁에 빠진 샌프란시스코 출신 게이 작가의 처절한 세계 여행기를 코믹하게 그린다.
인생에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무명작가 아서 레스.
9년 간 연인으로 지낸 전 남자친구가 다른 사람과의 결혼식에 초청하는 청첩장을 보내온다.
이 초대를 받아들이지도 거절하지도 못하는 난감한 처지에 몰린 레스는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을 핑계를 쥐어짠 끝에 세계 문학 기행을 떠나기로 한다.
그동안 거절한 각종 문학 관련 행사 초대에 모두 응하기로 한 것이다.
뉴욕에서의 유명 작가 인터뷰, 멕시코에서의 작가 초청 콘퍼런스, 이탈리아에서의 문학상 시상식,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의 겨울 학기 수업, 경유지인 프랑스 파리에서의 짧은 로맨스, 모로코 사막 횡단 여행, 인도의 작가 휴양지, 일본 가이세키 요리 탐방 기행까지.
그사이 전 남자친구는 결혼했고, 레스는 50세 생일을 맞이한다.
레스의 여정 속에서는 짠 내 나는 사건 사고들이 우연처럼 연달아 발생하지만, 그는 그 모든 경험 속에서 삶의 희망을 되찾는다.
아무도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자기 생각보다 자신이 훨씬 더 사랑받는 사람이었고, 비록 평범하게 늙어갈지라도 삶은 흥미롭고 소중하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그들이 삶의 모든 것을 겪고도, 굴욕과 실망과 상심과 놓쳐버린 기회, 형편없는 아빠와 형편없는 직업과 형편없는 섹스와 형편없는 마약, 인생의 모든 여행과 실수와 실족을 겪고도 살아남아 쉰 살이 되었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다.'(215쪽)
좌충우돌 다사다난한 여행의 막바지에 연인과 트레이드 마크인 파란색 정장, 여행 가방, 턱수염과 자존감까지 모든 것을 잃어버린 레스는 출판사에서 반려한 소설을 새롭게 다시 쓰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마침내 돌아온 집에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반갑게 외치는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당신이, 늙은 아서가, 오랜 사랑이, 현관에 어린 실루엣을 올려다보는 당신이 보이는데 - 내가 뭘 원하느냐고? 사람들이 원했던 길을, 그럭저럭 쓸 만한 남자를, 편하게 빠져나갈 길을 선택한 이후에 - 나를 본 당신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 그 모든 걸 손안에 쥐었다가 거부한 지금에, 이 삶에서 내가 원하는 게 뭐냐고? 나는 말한다. "레스!"'(316∼317쪽)
앤드루 숀 그리어는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왔지만, 이번 퓰리처상을 받기 전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나이 듦과 사랑의 본질에 관한 경쾌한 소설. 음악적인 산문과 광활한 구조의 책'이라는 호평을 받은 이번 소설은 퓰리처상 100년 만의 가장 과감한 선택으로 회자한다.
강동혁 옮김. 324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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