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②의회 민주주의 발상지? 돌파구 못 찾는 '불임정치'

입력 2019-03-31 07:00  

[브렉시트] ②의회 민주주의 발상지? 돌파구 못 찾는 '불임정치'
집권 보수당도, 제1야당 노동당도 브렉시트 놓고 내부 분열
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 정당은 '영국'보다 지역 우선 내세워



(런던=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영국 브리스틀 박물관 및 미술 갤러리는 당초 브렉시트(Brexit) 예정일이었던 29일(현지시간)을 맞아 뱅크시의 '위임된 의회'(Devolved Parliament)라는 작품을 전시했다.
이 작품은 영국 하원을 그린 것이지만 하원에는 의원들이 아닌 100명의 침팬지가 앉아있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
'얼굴 없는 예술가'인 뱅크시는 영국 출신으로 전 세계 도시의 거리와 벽 등에 그라피티(낙서처럼 그리는 거리예술)를 남기는가 하면, 유명 미술관에 자신의 작품을 몰래 걸어두는 등의 파격적인 행보로 유명하다.
'위임된 의회'는 뱅크시의 2009년 작품으로 당시 브리스틀 박물관에 전시됐다.
이후 익명의 수집가가 이를 구입했지만 예정됐던 브렉시트 일을 맞아 뱅크시의 허락하에 이날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국민투표 후 3년여가 지날 때까지 브렉시트 단행은커녕, 영국이 어디로 향할지조차 결정하지 못하는 무능한 의회를 비꼬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브렉시트는 의회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자부해 온 영국 정치권의 민낯을 전 세계에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전후로 불거진 영국 정치권의 분열과 혼란은 지난해 11월 영국과 유럽연합(EU)이 2년여에 걸친 협상 끝에 브렉시트 합의안에 서명한 뒤로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거듭된 호소에도 불구하고 노동당 등 야당은 물론이고, 집권 보수당 내부에서조차 합의안에 대한 단결된 지지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결국 브렉시트 합의안은 두 차례의 승인투표(meaningful vote)에서 기록적인 표차로 부결했고, 브렉시트 공식 연기 결정 후 지난 29일 실시된 EU 탈퇴협정 표결마저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당장 영국은 오는 4월 12일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는 '노 딜'(no deal) 브렉시트를 하거나 5월 중순 유럽의회 선거 참여를 전제로 브렉시트를 '장기 연기'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됐다.
영국 정치권의 혼란은 여당과 야당이, 여당과 야당 내부에서도 EU 잔류와 EU 탈퇴 입장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EU 탈퇴를 주장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어떤 브렉시트를 할지에 관해서 통일된 의견을 찾기 어렵다.



우선 집권 보수당은 역사적으로 수십년간 친 EU와 유럽회의론자 사이에서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미 1975년에도 유럽경제공동체(EEC) 탈퇴를 놓고 보수당은 분열을 보였고, 결국 국민투표를 통해 잔류를 결정한 바 있다.
보수당 내 유럽회의론자들은 EU와의 완전한 결별을 의미하는 '하드 브렉시트'(hard Brexit)를 원한다.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 데이비드 데이비스 전 브렉시트부 장관, 도미니크 랍 전 브렉시트부 장관, 유럽회의론자 모임인 '유럽연구단체'(ERG) 수장인 제이컵 리스-모그 의원과 스티브 베이커 부의장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메이 총리를 비롯한 보수당의 다른 편에서는 EU와 결별하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소프트 브렉시트'(soft Brexit)를 추구하고 있다.
필립 해먼드 재무장관, 앰버 루드 고용연금부 장관, 그레그 클라크 기업부 장관 등도 이른바 '소프트 브렉시트' 지지파로 분류된다.
브렉시트와 관련한 변곡점이 생길 때마다 어떤 때는 브렉시트 강경론자 각료가, 다른 때는 친 EU 각료가 사표를 던지고 메이 총리를 압박하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론자들은 심지어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에 반발해 지난해 말 당 대표인 메이 총리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제기하기도 했다.
별다른 당내 기반 없이 총리직에 오른 메이 총리 입장에서는 당내 반란을 제압하는 데만도 힘이 부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양당 정치체제의 또 다른 축인 노동당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노동당 내에도 브렉시트 찬성과 반대 세력이 혼재돼 있다.
이런 가운데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의 모호한 브렉시트 전략이 더 큰 혼란을 불러왔다.
국민투표를 통해 EU 탈퇴가 결정된 만큼 노동당은 브렉시트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입장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EU 관세동맹 및 단일시장 잔류 등 가능한 한 EU와 긴밀한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메이 총리가 브렉시트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여러 차례 코빈 대표와 대화를 시도하고 협상의 손을 내밀었지만, 코빈 대표는 그때마다 이를 뿌리쳤다.
이같은 보수당과 노동당의 상황은 결국 일부 의원들이 탈당해 신당인 '체인지 UK-독립그룹'(Change UK-The Independent Group)을 창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보수당과 노동당 소속 의원 11명이 탈당해 만든 '체인지 UK'는 기존 보수당과 노동당의 양당 시스템을 흔들고, 나라를 좀 더 좋은 곳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기를 희망한다고 창당 취지를 설명했다.
브렉시트와 관련해 영국 내 지역별 여론이 엇갈리면서 지역 기반 정당들도 제각각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점은 브렉시트 방정식을 아예 풀기 힘든 문제로 만들었다.
보수당과 노동당에 이어 영국 하원의 제3당인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은 스코틀랜드 민족주의를 표방한다.
SNP는 제2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 결정을 번복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를 이끄는 SNP는 2016년 국민투표 당시 스코틀랜드 지역은 EU 잔류 의사가 더 많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EU 단일시장에서 제외되는 '하드 브렉시트'를 할 경우 스코틀랜드가 아예 영국에서 독립해 EU에 남을 수 있도록 제2 분리독립 주민투표 기회를 요구하고 있다.
앞서 지난 2014년 실시된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주민투표는 독립 반대 55.3%, 찬성 44.7%로 부결됐다.



보수당과 사실상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북아일랜드 연방주의 정당인 민주연합당(DUP·10석) 역시 '영국'보다는 '북아일랜드'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DUP는 '안전장치'(backstop)에 대한 반발로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거두지 않고 있다.
영국과 EU가 미래관계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영국 전체를 당분간 EU 관세동맹에 두도록 한 '안전장치'가 가동되면 북아일랜드만 별도로 EU의 상품규제를 적용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지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DUP는 '안전장치'를 제거하지 않는 한 어떠한 브렉시트 합의안도 수용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아일랜드 민족주의자 정당인 신페인당은 '안전장치'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영국 하원에서 7석을 확보하고 있는 신페인당은 영국 여왕에 대한 충성 맹세를 거부하면서 전통적으로 의회 표결에는 불참하고 있어 메이 총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에 브렉시트 제2 국민투표를 통해 EU 잔류를 희망하는 자유민주당, 기타 웨일스민족당이나 무소속 의원들까지 제각각 입장을 나타내면서 메이 총리의 합의안은 물론 EU 관세동맹 잔류, 제2 국민투표, 브렉시트 취소 등 그 어떤 브렉시트 방안도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의 무능으로 인한 혼란의 피해는 고스란히 영국 국민과 기업들에 전가될 수밖에 없다.
이미 브렉시트 결정 이후 글로벌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영국 내 투자를 축소하거나, 아예 유럽지역으로 인력과 자산을 옮기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경기 둔화에다 브렉시트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영국 경제는 지난해 1.4% 성장하는 데 그쳐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앞서 마크 카니 영란은행 총재는 별도 전환(이행)기간 없는 '노 딜' 브렉시트가 발생하면 1970년대 '오일쇼크'와 유사한 충격이 영국 경제에 가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치권의 무능으로 아직 종착역이 보이지 않는 브렉시트는 여전히 영국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만 드리우고 있는 셈이다.
pdhis9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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