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성폭력 피해자, 무고혐의 연루 정황…"피해자 아닌 '피해 주장자'"
계좌추적 통한 금전거래 확인 주력할 듯…고위인사 연루 의혹도 철저 확인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김학의(63) 전 법무부 차관을 둘러싼 의혹을 다시 파헤치기 위해 검찰이 대규모 수사단을 꾸리고 수사에 나선 가운데 사건이 재조명된 계기였던 김 전 차관의 성폭력 의혹 진상규명 작업에 새 변수가 등장했다.
과거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 바 있어 새로운 증거를 찾아야 하는 점도 여전한 과제이지만, 김 전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58) 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일부 여성들이 과거 윤씨를 상대로 무고를 한 정황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진상규명 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 중 일부가 가해자 중 한 명인 윤씨를 무고한 정황이 사실에 부합하는 것으로 파악될 경우 김 전 차관의 특수강간 등 성폭력 의혹을 입증할 단서를 찾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별장 성접대 동영상 등 성폭력 의혹을 뒷받침하는 물증이 일부 있지만, 과거 무혐의 처분을 뛰어넘을 증거를 확보하려면 피해자 진술에서 기본 단서를 찾아가야 하는데 일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흔들리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사건을 재조사 중인 대검찰청 검찰과거사위원회 진상조사단은 지난 25일 과거사위에 '윤씨의 과거 동거녀 권 모(57)씨가 2012년 이 사건 성폭력 피해자로 알려진 최 모씨를 사주하는 방법 등으로 윤씨를 성폭력 가해자로 무고한 정황을 수사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씨의 사업파트너이자 연인이었던 권씨는 윤씨의 부인 김 모씨로부터 간통죄로 고소를 당하자 2012년 11월 윤씨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진상조사단은 권씨의 고소가 무고일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권씨가 윤씨에게 빌려준 20억여원을 돌려달라고 하자 윤씨가 부인 김씨와 공모해 간통죄 고소로 압박했고, 이에 권씨가 고소로 맞대응하다가 무리하게 '윤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식의 무고 주장을 했다고 볼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권씨는 과거 윤씨와 동거한 사실이 드러나자 이 사건 성폭력 피해자로 알려진 최 모씨를 끌어들여 윤씨를 무고하게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진상조사단은 보고 있다.
최씨는 2013년 검·경의 1차 수사에서 김 전 차관과 윤씨에게 원주 별장에서 특수강간을 당했다고 진술한 피해자다. 당시 경찰은 최씨의 진술을 토대로 김 전 차관과 윤씨를 특수강간 혐의로 기소해달라고 사건을 송치했는데, 검찰은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최씨가 자신의 삼촌을 윤씨의 운전기사로 소개해 준 것도 무혐의 처분의 결정적 이유 중 하나인 것으로 전해졌다.
진상조사단이 의심하는 것처럼 권씨와 최씨가 2012년 윤씨를 성폭행 혐의로 무고한 것으로 확인될 경우 김 전 차관과 윤씨의 특수강간 혐의점을 찾아내는 데 초점이 맞춰졌던 조사는 새 국면을 맞을 수밖에 없다.
최씨가 2013년 경찰과 검찰에서 한 피해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려워지고, 또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의 진술 신빙성도 신중하게 따져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사단의 한 관계자는 "최씨 등을 피해자가 아닌 '피해 주장자'로 여겨 사건을 심도있게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진상조사단의 조사는 결론을 정해놓고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의 진실을 명확하게 규명하는 위한 것이므로 피해 주장자들의 주장이 진실인지도 면밀히 살피고 있다"고 부연했다.
김 전 차관과 윤씨의 성폭력 혐의에 대한 반대 정황이 일부 확인되자, 조사단은 일단 두 사람의 뇌물거래 혐의를 확인하는 작업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이 혐의는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수사에 본격 착수한 검찰 수사단과 과거사위 진상조사단이 공조를 벌일 사안으로 꼽힌다.
수사단은 진상조사단과 협의하면서 김 전 차관과 윤씨 사이의 금전거래 여부를 샅샅이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계좌추적 등을 통해 1억원 이상의 현금이 오간 정황이 발견되면 공소시효가 15년인 특가법상 뇌물죄 적용이 가능해진다.
2013년 경찰과 검찰 수사과정에서 뇌물 거래 의혹을 부실수사하지 않았는지도 상세히 따져볼 것으로 관측된다. 특수강간 혐의에만 초점을 맞춰 수사를 벌이다, 뇌물 혐의 수사에 소홀했는지 확인해 보겠다는 것이다. 금전거래 정황이 의심되는데도 계좌추적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이유도 규명 대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차관 이외에 원주 별장을 드나든 사회 고위층 인사들의 성접대 및 뇌물수수 의혹도 진상조사단이 규명해야 할 남은 과제다. 상당수 공소시효가 지나 형사처벌 가능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조사단은 처벌과 상관없이 진실을 규명해 한 점 의혹도 남기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조사단 한 관계자는 "공소시효가 남았는지는 조사단의 조사와 무관하다"며 "유력 인사들이 윤씨로부터 성접대 등 향응을 받았거나 뇌물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철저히 조사해 진실을 밝히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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