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배구 흥국생명 통합우승 비결 공개…"선수 마음 움직이는 게 중요"
(용인=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그냥 엄마가 아니라 강인한 엄마 리더십이죠."
여자프로배구 흥국생명의 통합우승을 이끌면서 '유리천장'을 깬 박미희(56) 감독은 우승 비결을 이렇게 밝혔다.
흥국생명은 지난 27일 2018-2019시즌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 한국도로공사를 꺾고 통합우승을 이뤘다. 박 감독이 선수들을 딸처럼 챙긴다는 '엄마 리더십'이 화제가 됐다.
30일 경기도 용인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 감독은 '엄마 리더십'에 대해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아주 좋아하지는 않는다"라며 "엄마는 강하기도 하지만 부드럽기도 한데, 여기서는 부드러움만 강조되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드러움만 강조하는 것은 싫다. 너무 연약해 보일 수 있으니까"라며 "제 리더십을 다시 정의하자면 '강인한 엄마 리더십'이다. 따뜻하기만 한 엄마 리더십은 냉철한 스포츠 사회에서는 100% 통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박 감독은 선수들을 무조건 포용하지 않고 쓴소리도 마다치 않았다.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를 거머쥔 에이스 이재영(23)도 박 감독의 호된 꾸지람을 받고 성장했다.
박 감독은 "이재영이 데뷔 3년 차인 2016-2017시즌 정규리그 MVP에 올랐을 때 나태해진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재능만 믿고 '이 정도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자신만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 화가 많이 났다"고 떠올렸다.
당시 박 감독은 과격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한마디로 하면 '나 감독 안 해도 되니 너 이런 꼴 못 봐'라고 했던 거죠."
박 감독은 "재영이는 칭찬을 많이 받는 선수니까 남들이 안 해주는 말을 해주는 게 감독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그 이후 재영이는 혼날 짓을 안 했다. 열심히 배구를 잘하고 있으니까"라며 웃었다.
성장한 이재영을 보며 박 감독은 "저렇게 '언니'가 되는구나 싶다"면서 "자기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그래서 옆 사람이 잘하도록 노력하고 칭찬해주고, 배려하는 게 많이 늘었다"고 전했다.
박 감독은 인터뷰 전 커피숍에서 외국인 선수 레니카 톰시아(폴란드)와 차를 마시고 있었다. 박 감독은 톰시아가 선물해준 귀걸이를 보여주며 돈독한 사이를 자랑했다. 이런 부분이 여성 감독의 강점이기도 하다.
박 감독은 "제가 여성이어서 공을 때려준다든지 몸으로 하는 것은 남자 감독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저에게는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자신의 지도 철학을 이야기했다.
통합우승을 이룬 비결도 '똑같은 마음'을 만든 것이었다고 박 감독은 설명했다.
그는 "간절함이 똑같아야 한다. 모두가 똑같은 목표를 생각하면서 뛰어야 하더라"라고 말했다.
2014년 처음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아 5시즌째 팀을 이끄는 박 감독도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잘해야 한다'는 욕심이 앞서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신경 쓰고 챙기려고 했다.
그런데 감독 3시즌 차인 어느 날 선수들에게 익명으로 하고 싶은 말을 쓰라고 했는데 '모든 것에 간섭하지 마세요'라는 쪽지를 받았다. 박 감독은 "충격받았다"라고 떠올렸다.
그는 "그 이후 내가 선수들에게 해줄 것, 선수들이 스스로 할 것, 내가 지켜보거나 해결해줘야 할 것을 구분하게 됐다. 또 나도 숨 돌릴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박 감독은 국내 4대 프로스포츠(야구·축구·배구·농구)에서 여자 감독 최초로 통합우승을 이뤄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여성'이라는 점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유리천장을 깼다는 찬사와 시선이 그를 또 한 번 여성의 틀에 가두지는 않을까 우려도 생겨난다.
하지만 박 감독은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다. 처음이니까 그런 것이지, 시간이 흐르면 슬슬 안 그렇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여자 감독이 많이 생길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역대 4대 프로스포츠에서 여성 지도자는 박 감독을 포함해 4명뿐이다. 여자배구에서는 조혜정 GS칼텍스 전 감독이 2010년 한 시즌 동안 팀을 맡았고, 현대건설 이도희 감독은 2017년 사령탑에 올랐다. 여자농구에서는 이옥자 KDB생명 감독이 2012년 지휘봉을 잡았다가 1년도 안 돼 하차했다.
박 감독은 "남자들이 감독에서 내려오면 그냥 바뀌는 거고, 여자 감독이 바뀌면 '실패했다'고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선배 감독들도 저처럼 많은 시간을 받았더라면 달랐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도희 현대건설 감독에게 축하 문자를 받았다는 박 감독은 "제가 1, 2년 차에 겪은 일들을 이 감독도 부딪히며 경험하는 게 아닐까"라고 응원했다.
2016-2017시즌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지만, 2017-2018시즌에는 꼴찌로 추락하고, 2018-2019시즌에는 통합우승에 오르는 경험을 가진 박 감독이다.
악성 댓글에 시달렸던 그는 "욕을 너무 많이 먹어서 오래 살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하지만 요즘은 높아진 배구, 특히 여자배구의 인기에 힘을 얻는다.
박 감독은 "제가 해설자를 했을 때 여자배구는 남자배구 관중이 다 빠져나간 뒤에 경기했다. 오후 5시 경기 때는 남자배구 관중이 오기 전에 모든 게 다 끝났다"며 "그때 선수들이 안쓰러웠는데 지금은 선수들의 좋은 경기력과 바뀐 시간대, 입소문을 타고 많이 찾아와주시는 관중 덕분에 인기도 많아졌다"고 흐뭇해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박 감독은 2019-2020시즌 구상도 살짝 귀띔했다. 자유계약선수(FA)는 내부 선수만 잡겠다는 방침이다. 올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흥국생명 선수는 김나희, 신연경, 공윤희 등 세 명이다.
박 감독은 "올해는 우리 집토끼를 지키는 게 우선이다. 외부 FA 선수가 오면 우리가 지금 모아놓은 선수들을 보상선수로 내줘야 하기 때문"이라며 "올해는 내실을 다지고, 내가 계속 감독을 하면 내년에 조금 더 보강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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