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판사 사법농단 재판 첫 증언…"문건 작성 부담 느꼈다"

입력 2019-04-02 12:22   수정 2019-04-02 14:24

현직 판사 사법농단 재판 첫 증언…"문건 작성 부담 느꼈다"
임종헌 전 차장 재판에 출석…"靑 반응 보고서 등 작성, 직접 반응 듣진 않아"
"성창호 부장, 행정처 심의관들과 수시로 접촉해 대법원장 의중 전달"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처음 증인으로 소환된 현직 법관이 임 전 차장의 지시에 따르며 부담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정다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는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임 전 차장의 속행 공판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정 부장판사는 2013∼2015년 법원행정처에서 기획조정심의관으로 일하며 당시 기획조정실장이던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고 각종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농단 관련 재판에서 현직 법관이 증언석에 앉은 것은 정 부장판사가 처음이다.
정 부장판사는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사건에 대해 선고를 내린 뒤 각계 동향을 파악한 보고서를 임 전 차장의 지시로 작성했다고 인정했다.
이 보고서에는 "판결 선고 후 민정라인을 통해 취지가 잘 전달됐다", "재판 과정에서 대법원이 정부와 재계 입장을 최대한 파악하고 이해하려 노력한 것으로 본다" 는 등의 청와대 반응이 담겼다.
정 부장판사는 이 밖에도 임 전 차장의 지시로 상고법원 추진과 관련한 국회 동향,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민감한 사건에 대한 보고서 등을 작성했다고 시인했다.
아울러 자신이 작성한 보고서 중 '결재'란이 없는 보고서의 경우 임 전 차장에게 보고한 뒤 지시에 따라 법원행정처 차장, 처장 등에게 보고했다고 밝혔다.
다만 정 부장판사는 보고서에 담긴 청와대의 반응에 대해 "제가 직접 청와대 근무자에게 이야기를 들은 바는 없다"며 "누구로부터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관련 문건을 제가 작성한 것은 맞지만, 그것을 당연한 업무로 여기고 수행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어 검찰이 "조사를 받을 때 '사법부 권한을 남용하는 부분이 많이 포함됐고, 비밀스럽게 작성해 부담을 느낀 것이 사실'이라고 진술한 것이 사실이냐"고 묻자 정 부장판사는 "그렇게 진술한 적 있다"고 답했다.

다만 임 전 차장의 부당한 지시를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던 다른 심의관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과중한 업무로 인한 어려움은 있었지만, 임 전 차장 개인으로 인한 부담이나 어려움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고 밝혔다.
정 부장판사는 또 법원행정처에 재직하던 때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비서실에 근무했던 성창호 부장판사로부터 수시로 대법원장의 의중을 전달받았다고 증언했다.
정 부장판사가 재직 당시 작성한 대법원장 비서실 판사의 업무 이관 방안 관련 문건을 보면, 비서실 판사가 법원와 법관사회의 동향을 파악해 수시로 보고하고 이에 대한 대법원장의 의중을 전달해 왔다고 기재됐다.
이와 관련해 당시 성창호 부장판사는 심의관들에게 각자 하는 업무를 보고하도록 독촉했고, 법원행정처의 실·국에 수시로 방문했다고 정 부장판사는 진술했다. 또 심의관들과의 회의 석상이나 사석에서 대법원장의 생각을 전달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해당 문건의 내용에 대해서는 "다른 문건에 나온 비서실 판사의 업무를 기재한 것이라 그 이상은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sncwoo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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